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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구축하자 사람들은 나치의 이상론적인 선전인 “나는 미래를 다녀왔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을 되뇌며 줄줄이 스탈린을 배알하였다.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터무니 없는 이런 정치 세력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드러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악의 세력에 추종하는 몇 가지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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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근찬 한국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뉴데일리
현대 경영의 비조(鼻祖)로 칭송 받던 피터 드러커는 청년 시절 독일에서 겪었던 일을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 ‘방관자의 모험’에서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1933년 당시 23세의 드러커는 쇠퇴하던 비엔나를 떠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임 강사 자리와 신문사 편집인 등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독일은 절대주의 정권 나치가 권력을 잡고 유럽 대륙을 혼돈 속으로 몰아 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드러커는 벌써부터 절대주의 나치 치하에서는 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은 해 왔었지만 다소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결심을 굳히고 즉시 독일을 떠나게 하는 계기는 그 해 초에 겪은 아래의 세 가지 경험이었다.
1) 불의를 못 본체한 어느 경륜 있는 생화학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나치 정치위원이 임명되었을 때 그리고 그 새 지배자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교수뿐 아니라 조교까지 교수회의에 소집됐을 때, 모두들 힘겨루기가 코 앞에 닥쳤음을 알았다. 신임 나치 지도위원은 인사말 같은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유대인의 교내 출입을 금할 것이며, 급여 지불 없이 유대인을 해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군대에서도 듣기 어려운, 더더욱 학문의 전당에서는 전혀 들어 보지 못한 비난과 독설, 육두문자로 뒤덮인 긴 열변을 토했다. 연설이 끝나고 긴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저명한 원로 생화학자가 뭔가 한 마디 해주길 기다렸다. 마침내 그 훌륭하신 자유주의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아주 흥미로운 연설이었소, 정치위원 동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매우 계몽적이었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생리학 연구비가 좀 더 지급될 것인지 알고 싶소이다.” 드러커는 진저리가 쳐졌다. 그리고 48시간 내에 독일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2) 출세욕에 눈 먼 괴물
헨슈는 드러커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게너랄 안차이거’ 지에 근무하던 사람인데, 나치가 정권을 잡자 프랑크푸르트 정치위원이 되었다. 그는 드러커가 사표를 냈다는 말을 듣고 능력 있는 드러커를 붙잡아 두려고 달려 온 것이었다. 드러커가 미국으로 갈 뜻을 분명히 하자 헨슈는 흥분해서 말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난 똑똑한 사람이 아니오. 난 그걸 알죠. 난 권력과 돈을 갖고 싶은 거요. 그래서 4, 5년 전 나치가 처음 시작했을 때 일찌감치 합류한 거요.”, 그 말과 함께 그는 방을 뛰쳐나가 계단을 내려 갔다. 그러나 문을 닫기 전에 그는 다시 한 번 돌아서서 외쳤다. “그리고 잊지 말아요. 당신이 미국에 가게 되면 엘리제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소!” 헨슈는 나치에 합류하면서 유대인인 아내 엘리제와는 이혼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내를 걱정하고 있었다. 헨슈는 후일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로 활동했는데, 얼마나 잔인했던지 그의 부하들에게조차 ‘괴물’이라고 불렸다. 그는 독일이 패전 후 최고 전범으로 수배 받다가 어느 집 지하실에서 연합군에 체포되자 자살했다.
3) 자신만이 나치를 순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순진한 양
섀퍼는 독일의 유명 일간지 ‘베를리너 타게블랏’지의 편집장이 되어 달라는 언질을 나치로부터 받고 미국에서 오는 중이었다. 그는 몇 년간 그 신문사의 미국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선거 유세에도 참여하여 그의 사적인 친구가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드러커는 비엔나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섀퍼의 친구인 선배 몬트겔라스와 함께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몬트겔라스는 나치가 서방에 잘 알려진 섀퍼를 단지 이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며 섀퍼의 생각을 돌리길 원했다. 그러나 섀퍼는 자신이 그 제안에 동의하려는 이유는, 조국 독일이 더 이상 나치에 의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얼마 후 섀퍼는 나치의 대단한 환영을 받으며 신문사의 편집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나치로부터 이용 당했다. 섀퍼는 나치가 사실 상 유대인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설, 히틀러가 세계 평화를 열망한다는 사설 등을 쓰거나, 후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만행이 외부에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즉시 외국 대사관을 순회하며 단지 우발적인 작은 사건일 뿐이라고 둘러대는 일을 했다. 그러나 2년 후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그 신문사와 섀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드러커는 악의 세력에 추종하는 세 유형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들 중 어느 것이 더 큰 해악인지 자문한다. 그러면서 가장 큰 죄는 첫 사례인 지식인의 무관심을 들었다. 눈먼 출세욕과 자만에 찬 자기 과신은 역사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죄악이지만 첫 유형은 현대 사회에 새로이 만연하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다른 두 경우와 달리 첫 번째 유형의 죄악은 사회가 악의 세력으로부터 수복된 후에도 죄를 추궁할 수 조차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