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악한 영화계 현실 '자살신드롬' 부추긴다?

    영화 '젊은날의 초상'으로 유명한 곽지균(본명 곽정균) 감독이 25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향년 56세.

    곽 감독은 이날 오후 연탄가스를 피워둔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돼 일산화탄소 중독에 따른 사망으로 추정된다.

    특히 곽 감독의 시신 옆에 있던 노트북에서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는 내용의 글귀가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곽 감독이 최근 일거리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 자살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 ▲ 25일 자살로 유명을 달리한 곽지균 감독.
    ▲ 25일 자살로 유명을 달리한 곽지균 감독.

    한 영화계 관계자는 "곽 감독이 10년 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려왔다"면서 "'사랑하니까 괜찮아'의 흥행 실패 이후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했었다"고 전했다.

    지난 1986년 '겨울나그네'로 영화 감독에 데뷔한 곽 감독은  1991년 '젊은날의 초상'을 연출, 제2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등 총 8개 부문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는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김래원과 배두나가 주연한 '청춘(2000)', 지현우-임정은 주연의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등을 선보인 바 있으나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영화계에선 배우 최진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우울증으로 영화계 인사가 세상을 등진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반응이다.

    한 제작·배급 관계자는 "한국 영화계가 외관상으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곤 있으나 아직도 일선 현장에선 춥고 배고픈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들에 비해 작품을 생산해 내는 인력들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곽 감독이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을 기도한 흔적은 과거 안재환의 자살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서 "최근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은 연예인들이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현재 다수의 영화계 관계자들은 고인의 자택이 있는 대전으로 향하고 있으나 아직 빈소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한편 곽 감독의 자살로,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영등포동 한 호텔에서 목숨을 끊은 젊은 영화 조감독의 죽음이 다시금 영화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방자전'의 스태프로 활약 했던 김OO(27)씨는 당시 극심한 생활고와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와 영화 스태프 생활을 오래했던 한 관계자는 "얼마전 임금 체불 문제로 제작진과 마찰을 빚기도 했던 한 드라마 스태프들의 사례처럼 현장에서 느끼는 경기 침체는 이루 말 할 수 없다"면서" 배우들의 몸값이 커지면서 제작비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지만 거꾸로 스태프들의 임금 문제는 정말 심각한 상태에 이르른 상태"라며 "이는 비단 촬영·조명 스태프 뿐 아니라 제작·연출을 담당하는 감독 역시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질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키 위해선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갈 수 있도록 자금 지원책이나 경비 운용에 대한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