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22) 

     내가 거처하는 사가(私家)는 행낭채와 안채로 나뉘어져 있지만 네칸짜리 기와집이다.
    본래 어느 고관이 몰래 딴살림을 내준 집이었다는데 어찌어찌 하여 내가 재석과 함께 은신처로 삼게 되었다.

    집에는 박무익이 데려온 늙수구레한 행낭어멈이 집안일을 봐주었으므로 불편하지 않았다.
    가끔 박무익과 수하 서넛이 묵고 갔지만 골목 안쪽 집이어서 항상 조용했다.

    박무익이 다녀간 날 저녁 무렵이었다.
    그날은 오후에 제중원까지 들렀다 오는 바람에 늦게 골목 입구로 들어섰던 나는 바깥 행낭채 불이 꺼져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하면서 뒤를 따르던 재석이 어느새 앞쪽으로 나섰다. 그러더니 곧 발을 멈췄으므로 나도 담장에 붙어섰다.

    이제 집까지의 거리는 30보쯤이 되어있다. 골목 좌측은 종로에서 어물전을 하는 조씨집 후문이 있었지만 항상 잠가 놓는다.

    그때 재석이 앞쪽을 응시한 채 낮게 말했다.
    「나으리, 행낭채 불이 꺼졌고 안채 불이 켜져 있군요. 수상합니다.」

    그러더니 머리를 돌려 나를 보았다. 어둠속에서 눈동자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만일 제 고함 소리가 들리거든 곧장 밖으로 뛰십시오. 일단 제중원으로 피신하시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그때였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았다.
    셋이다. 놀란 내가 입만 딱 벌렸을 때 재석이 몸을 틀어 골목 입구를 향하고 섰다.

    「나으리, 헤치고 뜁시다.」

    잇사이로 말한 재석이 발을 떼었으므로 나도 뒤를 따른다. 숨이 막혔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놈들은 우리를 미행해 온 것이다. 앞뒤에서 막은 상황이 되어있다.
    내 등이 근질거리는 느낌이 왔다. 뒤쪽 사가에는 아마 누군가 숨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재석이 거침없이 다가갔으므로 셋은 주춤거렸다. 일단 기선제압이 된 것이다.
    「앗!」
    그 순간 낮은 외침이 울리더니 재석의 몸이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셋과 부딪치는 것 같았는데 어둠속이어서 구분이 잘 안되었다.

    그때였다.
    「꽝!」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앞쪽에서 들리는 바람에 나는 그야말로 혼비백산을 했다. 겨우 바로 섰지만 정신이 아득했다. 눈을 치켜떴어도 앞쪽 어둠속은 분간이 안되었다.

    「나으리!」
    갑자기 앞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나는 다시 발을 떼었다. 재석이 부르는 것이다.

    다가간 나는 땅바닥에 어지럽게 널부러진 세 사내를 보았다.
    모두 양복쟁이였는데 어둠속에서 다리에 감은 각반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일본군 시늉이다.

    재석이 내 팔을 쥐고 끌었으므로 나는 다시 발을 떼었다.
    그때 쓰러진 사내 하나가 낮게 신음을 뱉았다.

    길을 어떻게 내달렸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마 5분쯤이나 정신없이 재석을 따라 내달렸을 것이다. 이윽고 우리가 멈춰선 곳은 서촌 입구였다.

    「이것을 빼앗았습니다.」
    길가 담장에 붙어선 재석이 숨을 헐떡이는 내 눈앞에 뭔가를 꺼내 보였다.
    화약 냄새가 맡아졌다. 권총이다.

    놀란 내가 숨을 삼켰을 때 권총을 치운 재석이 다시 뭔가를 꺼내 보였다.
    종이도 있고 헝겊 뭉치도 있다.

    「놈들 주머니를 뒤져 꺼냈습니다. 놈들이 누군가를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재석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때서야 구사일생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