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가정집에서 말없이 청소하던 장모(60·여)씨 앞에 사복 경찰관 2명이 나타났다.
    사기 혐의로 체포한다는 말에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경찰 차량에 탔다. 귀국 이후 도망가지 않고 왜 집에 다시 돌아왔느냐는 물음에 "후회한다"고만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18년 전 장씨는 서울 마포구 A호텔(현재 폐업) 1층에서 유명 브랜드 빵집을 운영하는 '마음씨 좋은 여사장님'이었다.
    타고난 미모에 자주 공짜로 빵을 한가득 집어주는 시원한 성격 덕분에 가게에 들러 수다를 떠는 단골도 많았다. 말 그대로 `사교의 여왕'으로 통했다.
    장씨는 사람들에게 '남편이 청와대 별정직 간부이고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경제 분야 업무를 본다'고 자랑하면서 공무원 연금매장이나 군인아파트 분양 등에 투자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가게 단골과 지인 5명에게서 받은 돈이 모두 12억2천여만원. '호텔 베이커리 사장님이 설마 거짓말하겠느냐'며 투자금을 낸 이들은 1998년 7월 빵집이 갑자기 부도가 나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땅을 쳤다.
    애초 가게는 장씨가 빌린 1억원으로 마련한 '사상누각'이었다. 적자가 계속돼 빚은 7억원으로 불었다. 자금난에 돈을 마련하려고 했던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커져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그녀의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장씨는 경찰 수사를 피해 가족을 놔둔 채 미국으로 출국,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 옷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며 불법 체류자로 10년을 떠돌았다.
    이후 생활고에 지치자 2008년 귀국해 남편과 딸이 있던 집으로 돌아왔다. 주민등록도 말소됐지만 남편은 별말 없이 맞아줬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집안일을 하며 2년을 지냈다. 사기죄 공소시효는 10년이지만 해외도피를 한 탓에 기한이 고스란히 남아 여전히 수배자 신세였다.
    경찰 관계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아 검문검색에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설마 하는 생각에 가족의 집을 찾아갔더니 피의자가 있어 놀랐고, 인간적으로 측은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피해 사실이 있어 체포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경찰에서 "빼돌린 돈은 빚을 갚고 미국 도피 비용으로 대부분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장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25일 구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