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혁명 50주년이 이 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의 위치를 재조명해주는 희년(禧年)정신 실천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 뉴데일리
    ▲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 뉴데일리

    50년 전인 1960년 4월 19일, 서울대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3년생으로 문리대 학생 데모를 준비, 조직하고 4.19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가 “이젠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재평가의 당위성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한국 갤럽과 한국논단이 실시한 한국 정치지도자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친미사대주의자(53%), 반민주적 독재자(18%), 남북영구분단의 원흉(18%)이라는 등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었고 ‘독립투사이며 건국의 아버지’라는 평가는 1.3%에 불과해 한국 청년들 다수가 김일성보다 이승만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총재는 “4.19혁명 이후 이 대통령을 보는 사회분위기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면 이 문제는 한 정치인 이승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자칫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에도 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라고 밝혔다. 한 인간의 생애는 누구나 장점과 단점, 과오와 업적의 결합체일진데 그의 생애의 특정시기와 몇 가지 사건만을 떼어내서 과오, 실책만을 들추는 것은 정당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냉전 종식과 소련 및 동구 공산권의 붕괴에 따라 한반도에 관한 공산권 소장 자료들이 공개됨으로써 베일에 가려졌던 한반도에서의 분단국가 성립과정과 한국전쟁발발원인의 진상이 밝혀진 것도 재평가해야 할 하나의 이유라고 이 총재는 말했다.
    그는 셋째 이유로 냉전으로 한반도가 분단되는 상황에서 이승만이 추구했던 유엔감시하의 총선거로 세워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소련 군정이 세운 북한 공산정권에 비해 국가발전의 모든 부문에서 너무나 올바른 선택이었음이 현실 역사 속에서  입증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이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분단될 수밖에 없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내외정세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자율정부수립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 총재는 “이승만 대통령은 그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대미외교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고 밝혔다.
    특히 유엔감시하의 자유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을 수립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유엔이 결의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의 지위를 얻게 한 점도 크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총재는 “이 점은 소련의 위성정권으로 출발한 북한과 너무나 대조가 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나아가 건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헌법을 갖는 국가로 세움으로써 공산독재를 추구한 북한과는 달리 오늘날 세계사의 중심대열에 올라서서 국가의 수준을 G20반열에 끌어올린 기초를 다졌습니다.”
    이 총재는 이 점에서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이승만 박사의 공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또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동란에서 공산침략군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지킨 지도력과 전시외교능력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로를 각별히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과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해 6.25동란 후 60년 동안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을 방지해 한국이 오늘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안보환경을 조성한 점은 중요한 공헌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건국의 기초를 마련하는 내정개혁에서 보인 성과도 주요 치적으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 총재는 “해방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꽃필 여건이 아니었다”라며 “당시 문맹률78%의 한국에서 이 대통령은 초등교육 의무화를 서두르고 학교도 대폭 증설해 오늘의 교육 강국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건국과정과 6.25전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 재건에 힘썼고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원자력연구소를 만들어 원자력의 연구개발을 지원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공적으로 꼽았다.
    또 소작농 체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당의 반발을 극복하고 농지개혁을 단행, 자작농지의 비율이 전체농지의 92.4%에 달하게 한 것은 한국농업구조상의 획기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한국에서 60년대부터 시작된 개발연대가 이승만 대통령 집권기에 그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현재 밝혀진 사료에서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한반도의 영구분단의 원흉이라거나 6.25동란을 초래했다는 평가는 공산권 자료들이 공개되기 이전의 자료부족에 기인하거나 아니면 냉전사에 뿌리를 둔 잘못된 평가”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1990년대 공산주의의 길을 택한 소련을 비롯한 동구제국이 몰락하고 오늘날의 참담한 북한실정을 보게 되면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노선이 너무 정당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4.19 혁명 50주년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바르게 평가하는 움직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총재는?
    ▲ 4.19혁명당시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 3년생으로 문리과 대학 학생 데모의 준비, 조직,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
    ▲ 국토통일원 정치외교정책담당관 및 교육홍보실장, 통일연수원장 역임
    ▲ 11대, 12대, 15대국회의원 및 국회문교공보위원장 역임
    ▲ 일본 츠쿠바(筑波)대학 국제정치 객원연구원 역임 
    ▲ 호남대학교 및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 한중문화협회 총재 및 중국베이징대학 동북아 전략연구 중심 초빙연구원
    ▲ 호남대학교 명예 법학박사취득
    ▲ 정부의 홍조근정훈장, 벨기에 정부의 대십자수교훈장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