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깝습니다. 국민 여론을 선도하는 곳이 언론, 정치, 종교가 돼야 하는데 '아니면 말고' 식이 그 세 군데에서 가장 횡행한다는 것…. 그러니 국격 업그레이드가 걱정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강남 최대사찰 봉은사의 조계종 직영 전환 논란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불똥이 튀었다. 초기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겨냥, '정치권 외압설'로 시작한 것이 이제 좀 더 권력 핵심부를 지목해 '입막음' 논란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에 근무하다 외부 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박모씨가 명진 스님의 측근 김영국씨와 만나 기자회견 자제를 요청했으며, 이 가운데 이 수석이 김씨와 통화를 했고 회유와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 명진 스님의 주장이다. 근거는 박씨가 이 수석에게 전화통화를 했다는 것이 전부다. 이어진 통화내용에 관한 전언은 사람마다 다르다.

    명진 스님은 지난 11일 일요법회를 통해 김씨로부터 들었다며 "이 수석이 김씨를 회유했다. 김 거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할 수 없다고 하니, 이 수석이 전화기에 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다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정작 김씨는 19일자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까지 청와대, 총무원 등에서 '기자회견을 하지 말라'는 '충고'전화를 받았다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조언이었을 뿐 '압력성' 전화는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13일 이 수석은 법회 발언과 관련, 명진 스님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공개사과하면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성명을 내고 고소하라며 불감청 고소원(不敢請固所願, 겉으로 청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바란다)이라는데 물러설 수 있겠나. 이건 진실의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 이 수석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명진 스님은 한 인터넷매체를 통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과 법정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제발 고소 취하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 수석은 15일 기자들과 만나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이 수석은 이 자리에서 박씨와의 구체적인 통화사실과 시간, 통화장소까지 공개했다.

    박씨는 22일 저녁 11시경 130초간 전화통화에서 자신과 김씨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경위를 전했다고 한다. 이 수석은 "혹시나 사실관계가 다를 수 있어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해본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느닷없이 걸려온 박씨의 전화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이야기를 들었고, 기자회견을 않기로 했다는 소리에 "잘된 일이네" 정도 대꾸를 한 사실 이외 명진 스님의 주장은 거짓이란 것이다.

    술 자리에 있던 박씨가 김씨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명진 스님 측이 기자회견을 않기로 했다는 과정까지 말했다면 130초는 짧았을 시간이다. 김씨와는 통화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도 같은 말을 하고 있으며, 당시 이 수석이 통화했던 차안에 동승했던 인사도 이를 확인했다. 이 수석 측이나 김씨에 따르면 김씨 자신이 하지도, 듣지도 않았다는 말을 명진 스님이 들었다면서 '법회'를 통해 주장한 셈이 된다.

    이날 이 수석은 언론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언론사 정치부장, 논설위원까지 거친 이 수석은 "팩트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주장을 확인없이 싣고 있다"며 "정말 아닌 건 아니지 않나"며 후배기자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비판은 언제든지 'OK'다. 겸허히 듣겠다. 해석을 어떻게 하든 그것도 언론의 시각이니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룸살롱', 병역 허위사실 유포, "TK X들" 등 과거 사건과 비슷한 패턴

    이 수석을 겨냥한 이번 논란은 과거 사건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지난해 4월 '강남 룸살롱 시비' 의혹에 이어 '병역면제' 허위사실 유포, 그리고 최근 'TK 비하 발언' 논란 등 그를 겨냥한 일련의 사건은 '카더라'식의 의혹제기에 이어 정부에 반대적 입장을 보이는 일부 언론의 부풀리기, 인터넷을 통한 유포 순으로 진행됐다.

    세 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고, 해당 언론사는 정정보도를 내보냈다. '룸살롱 의혹'을 보도했던 경향신문은 초기 정정보도를 거부했지만 민형사상 소송이 진행되자 반론보도가 아닌 정정보도를 게재해 오보임을 자인했다.

    병장 만기제대를 한 이 수석에게 '병역면제자'라는 루머를 퍼뜨린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의 홍모씨의 경우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수석 측은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유포시킨 네티즌들 중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네티즌에 대해서는 고소를 취하했다.

    지난 3월 이 수석이 "TK X들"이라고 표현하며 대구경북 언론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고 보도한 경북일보 역시 초기에는 정정보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추가보도로 각을 세웠다. 그러나 사실 확인을 위한 언론중재위 조정까지 거부했던 경북일보는 민사소송이 준비되자 비로소 사과문을 포함해 잘못을 시인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현재 '명진 사건'에는 대표적 친노사이트로 알려진 오마이뉴스가 중심에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홍보수석실 관계자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나중에 허위로 밝혀지더라도 상처를 내고 보자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수석이 마치 정권 흠집내기를 위한 표적이 된 것 같다"면서 "바람 잘 날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