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6월 발생한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36)씨는 2005년 4월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나 3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힘들게 생활했다.
    남편을 잃은 아픔 위에 더해진 제2연평해전 전사자와 부상자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하고 김씨는 미국행을 택했던 것이다.
    천안함 실종.사망 장병 가족들에 대한 미흡한 고통해소 시스템이 가족들에게 김씨와 같은 상실감을 떠안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허둥지둥 대처에 오락가락 발표..가족 고통 가중
    침몰사고 이튿날인 지난달 27일 평택 2함대사령부로 진입하려던 실종자 가족들에게 군용트럭을 타고 온 병사가 총을 겨누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고의 파장을 간과한 군의 '초동대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앞서 군은 26일 오후 9시22분 사고가 발생했지만 11시간 가까이 지난 27일 오전 8시가 돼서야 실종자 명단을 발표했다. 가족 상당수는 언론 보도를 통해 사고 소식을 듣고 새벽에 무작정 부대로 향했고 실종 사실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실종 통보를 못 받았거나 늦게 받은 데 대해 가족들은 군이 최우선 조처부터 미흡했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가족 연락처를 제대로 몰랐다면 장병 관리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족들은 나아가 오락가락하는 군 브리핑과 언론의 추측성 보도 등 부정확한 정보로 고통이 가중됐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협의회 이정국 대표는 "오죽 답답했으면 가족들이 직접 배를 타고 구조.인양작업을 지켜봤겠느냐"고 했다.
    군이 '천안함 밀폐공간에서 69시간 생존할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가족들은 '고도의 심리전', '시간벌기용'이었다고 분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국방부장관이 '천안함이 잠수함이 아니어서 완벽한 방수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사실에 근거해 가족을 안심시켜야 했는데 진실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침몰사고에 대한 위기관리시스템의 부재가 가족들에 대한 고통해소시스템의 부재로 이어진 것이다.
    ◇실종.사망 장병 예우 논란..가족들 '명예 지켜달라'
    지난 7일 시신이 수습된 고(故) 김태석 상사의 진급을 놓고 군 내부의 해석이 달라 가족들을 두 번 울렸다.
    해군 인사관계자가 "진급 예정일인 지난 1일 실종된 상태에서 상사로 진급됐지만, 합동조사단 조사를 통해 1일 이전 사망했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진급을 취소할 수 있다"고 밝히자 해군 공보과장은 "실무진의 착오다. 진급 승인 취소는 없다"고 해명했다.
    가족들은 실종.사망 장병들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먼저 이들을 '전사자'로 예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사와 공무에 의한 사망은 보상액수가 최고 5배까지 차이가 나는 등 예우가 확연히 다르다.
    한 가족은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전사가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에서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전사에 '준하는' 예우는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실종 장병 구조작업 중에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에게 지난달 31일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했다가 한 준위가 군복무 35년으로 2년 뒤 전역하면 광복장을 받게 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적절한 서훈 논란이 제기됐다.
    결국, 정부는 직접 전투에 참가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중대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그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충무무공훈장을 한 준위에게 뒤늦게 추서했다.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는 서해교전이 제2연평해전으로 명칭이 바뀌고 2함대사령관이 주관하던 추모식이 정부주관으로 격상되자 2008년 4월 귀국을 결정했다.
    김씨는 "생존의 이유로 한국을 떠났었지만 남편이 목숨을 걸고 지킨 조국인데 내가 어떻게 나라를 버릴 수 있느냐. 내가 원한 것은 명예회복이었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박동혁 병장의 부친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일부에게 격이 낮은 훈장이 수여되는 등 아직도 명예회복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천안함 실종.사망장병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격에 맞는 훈장 수여 등 명예회복이 우선이고, 사고 수습 후에도 가족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천안함 실종.사망 장병 가족들은 추가 희생자 발생을 우려해 구조작업 중단을 요구하고, 유실을 각오하면서도 함미(艦尾) 이동에 동의하는 등 '어려운 결단'을 내려 군의 부담을 덜고 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 가족과의 원활한 협조와 지원, 실종.사망 장병 예우에 대한 명확한 지침 마련 등 국가 차원의 고통해소시스템 구축이 남편과 자식을 맡긴 군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가족들에게 화답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