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6.25때 초급 장교였다.
    결혼 3개월 만에 터진 전쟁에 신혼부터 굴곡 많은 삶을 두 분은 이어갔다.
    금슬이 그리 좋지도 않으셨고, 그 시절 부부들이 한번쯤 겪었을만한 사연들 빠짐없이 헤쳐오셨다.
    지난 97년 아버지를 병으로 앞세우신 어머니도 지난 1월 세상을 뜨셨다. 돌아가신 지 한 달이나 됐을까. 어머니 계시던 집을 정리했다.
    평소 쓰시던 집기며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작은 함이 나왔다. 옆에서 거들던 아이는 “할머니 보석함인가봐”라고 말했다.
    어렵던 살림, 자신의 금반지 하나도 간수하기 어려웠을 처지에 보석이라니.
    그러면서도 한편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이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해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함을 열자 목도장과 통장 하나, 그리고 놀랍게도 아버지가 생전에 달았을 계급장이 나왔다. 지금과는 다른 금속으로 된 소위, 중위, 대위 등의 옛 계급장들이 한 쌍씩 한지에 곱게 싸여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에 달려있던 계급장들.
    평생 속만 썩여드린 남편의 계급장이 그리도 소중했을까? 아니면 두 분 좋았던 시절을 추억할 유일한 것이 계급장이었을까?
    계급장들을 갈무리하며 가슴 속으로부터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이사를 봄가을 소풍가듯 다니던 기억, 남들과 달리 퇴근길 아버지를 마중하지 못하던 기억….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부재중’이었다.
    또 좋은 추억보다 아쉬운 이별의 잔상만이 가득했다.
    지난 정치의 아픈 기억이 군을 갸우뚱한 시선으로 보게 하지만, 군은 그리고 그 가족은 분명 남다른 어려움을 인내하며 사는 이들이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리고 내가 겪은 것처럼.
    그리고 그 인내의 원천은 바로 ‘명예’다. 가난도 고통도 견딜 수 있게 하는 군인의 힘은 바로 내 조국을 지킨다는 ‘명예심’이다.

    이제 내 장롱 깊이 묻힌 아버지의 계급장을 어제 다시 떠올리게 됐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증언 모습을 보고서다.
    환자복을 입은 장병들이 도열하듯 앉아 있다. 부하를 잃은 함장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다.
    그들을 향해 질문들이 쏟아진다. 심문하는 투이다.
    이해한다. 하나라도 더 알고 밝히고 싶은 마음에서임을.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이들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이런 말을 했다. “2함대가 조용하면 대한민국이 조용하다. 서해안은 GP만큼 위험한 최전선이다.”
    우리는 지난 세 차례의 해전을 통해 김 제독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안다.

    천안함이 사고 해역에 뱃놀이를 갔었나? 아니다. 작전수행 중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을 어떤 것이든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 중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이들은 부상을 입었고 그들이 사랑한 동료들은 두 사람은 시신으로 돌아왔고, 44명은 아직 실종된 상태이다.

    환자복은 정말 아니었다. 불편한 사병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군복을 입고 TV 앞에 서야 했다. 그리고 동료를 잃은 비통함을 이기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경위를 설명해야 했다.

    추궁하는 듯한 말투는 삼가야 했다.
    임무를 수행하다 다친 장병들이 혐의자나 죄인인가? 국민으로서 이들을 위로하고 따스한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넨 이가 있었던가? 이들 중 자기 형제, 자식이 있었어도 과연 그리 몰아세울 수 있었겠는가?

    전우를 잃은 수병들을 이번엔 국회에 불러 증언을 듣는다고 한다.
    의원님들, 정말 이것은 아니다. 얻고자 하는 바가 정치적 이익이든 진실이든 군의 명예는 철저하게 존중돼야 한다. 아니,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지켜줘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지켜지고 민족도 지켜진다.
    천암함 장병들에게 이들을 대신해 사과한다.
    전우를 잃은 마음 아프겠지만 이젠 어깨를 펴라.
    무엇 하나 잘못이 없지 않은가? 당당하게 어깨를 활짝 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