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투쟁(鬪爭) ② 

     제물포까지는 걸어서 반나절 거리였지만 나는 말을 빌려 네 시간만에 항구에 닿았다.
    견마를 잡히면 마부가 걸어야했으므로 말 두 마리를 빌려 같이 달렸다.

    내가 어렸을 때 말을 탄 적이 있어서 기마군처럼 내달렸다.
    실로 어떻게 항구에 닿았는지 모르겠다.
    앞장 선 마부의 뒤만 보고 달렸는데 산천이 바람처럼 흘러갔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때문에 바다건너 청국 땅으로 쫓겨가는 수잔 생각뿐이었다.
    가슴이 미어졌고 목이 메었다.

    항구에 닿았을 때는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육손이는 수잔이 5시에 출발하는 영국 상선 펠리스호를 탄다고 했으므로 시간이 급했다.
    검은 연기를 내 뿜고 있는 페리스호는 금방 눈에 띄었지만 이미 승선이 시작되어 있었다.

    브리지 앞으로 다가가 영국인 선원에게 물었다.
    「의료 선교사를 찾습니다. 수잔 크로포드라고 하는데, 승선 했습니까?」
    선원이 머리를 젓더니 제법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소. 승객이 일백명이 넘어서 배가 떠나기 직전에야 확인이 되오.」
    「지금 확인 할 수는 없을까요?」
    「어렵소. 선장이 지시하기 전에는.」
    「제가 들어가 찾을 수는 없겠습니까?」

    내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승객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뒤로 밀려났다.
    「이것 보시오. 내가 들어가 찾게 해주시오.」
    뒤로 물러선 내가 소리쳤을 때였다.
    「리.」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는 정신없이 돌아섰다.

    수잔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꽃이 장식된 모자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주위를 환하게 비치는 것 같다.
    나하고 시선이 마주친 순간 수잔의 눈이 빨개졌다.
    놀란 듯 입술은 반쯤 벌려져 있다.

    「리, 여긴 왠일?」
    그러나 수잔의 목소리는 메어져 있다.
    「수잔, 미안해.」
    와락 다가간 내가 허겁지겁 말했다.

    「정말 미안해, 다 내 잘못이었어.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내...」
    「그만.」
    수잔이 손가락 끝으로 내 입술을 누르더니 살짝 웃었다.
    그 순간 수잔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승객들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면서 힐끗거렸다.
    옆쪽으로 비껴 선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섰다.

    나는 체면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수잔에게 열중되어 있었다.

    「리, 받아들여.」
    수잔이 손끝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햇살에 반사된 수잔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그 때 나는 무언가 수잔에게 주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 그 순간 내 입에서 저절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수잔, 너를 사랑해.」
    내 생전 처음 사용해본 단어다.

    그때 수잔이 환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 리.」
    수잔이 손을 뻗어 내 두 손을 쥐었다.
    그리고는 열띈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영원히 잊지 않을꺼야. 리.」

    「고마워, 수잔, 나 역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놔두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황급히 손으로 닦거나 얼굴을 감추었을 것이다.
    그것을 본 수잔이 입을 꾹 다물더니 울먹였다.

    「자, 어서 타시오!」
    선원의 목소리가 울렸으므로 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때 수잔이 내 손을 힘주어 쥐면서 말했다.

    「잘있어.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