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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격랑속으로 (29)
「리, 미국으로 가.」
수잔이 깍지 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이 곳은 수잔의 숙소 안이다.
오후 3시 반, 창밖은 환했고 주위는 조용하다.
본관과 오십보쯤 떨어진 별채여서 낮시간은 사람 왕래가 뜸하다.수잔이 이제는 손가락을 비벼대었다.
가늘고 흰 손가락이 벌레처럼 꿈틀대고 있다.
이것은 수잔의 버릇이다.
공부를 하면서 손을 쥔채 흔들거나 비비고, 꼬면서 떼지 않는다.
그것에 이제는 나도 익숙해져서 손을 떼면 허전하다.수잔이 말을 이었다.
「당신같으면 얼마든지 미국에서 잘 살 수 있어. 거기서 나하고 살아.」
이 말은 영어로 했다.
그래서 가르친 지 한달이 조금 넘었지만 수잔의 조선말은 늘지 않는다.
긴 말은 영어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웃기만 했더니 수잔은 이맛살을 찌푸렸다.「그래, 당신 아들도 데리고 가.」
「어제 자객한테 당할 뻔 했어.」
불쑥 내가 말했더니 수잔은 두어번 눈을 깜박이고 나서야 알아들었다.「자객? 어떻게?」
갈라진 목소리로 묻더니 손을 꽉 쥔다.
내가 설명을 하자 수잔은 똑바로 나를 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마치 깊은 물처럼 느껴졌다.그때 수잔이 갑자기 손을 풀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문으로 다가가 안에서 고리를 잠근다.
내 가슴이 거칠게 뛰었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내 앞으로 다가선 수잔이 어깨를 비틀면서 가운을 벗었다.
가운이 방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슈미쥬만 걸친 몸이 드러났다.
둥근 어깨, 무릎 밑으로 쭉 뻗어간 희고 미끈한 다리,
수잔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서있다.나도 수잔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 섰다.
「수잔.」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도 말끝이 떨렸다.그때 수잔이 말했다.
「나, 안아줘.」
나는 홀린 듯이 수잔에게 다가갔다.
내 손이 수잔의 허리를 감아 안았고 입술은 저절로 수잔의 입술을 빨아들이고 있다.
둘의 몸이 엉켜진 채 침대 위로 쓰러졌을 때 수잔이 헐덕이며 말했다.「리, 사랑해.」
나는 수잔의 팬티를 벗기는데 열중한 척 하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두 몸이 하나가 된 것은 순식간이다.
나는 뜨거운 수잔의 몸 안에 들어간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워진 느낌을 받았다.그때였다.
수잔의 입에서 탄성이 뱉아졌다.
낮지만 온몸으로 내품는 것 같은 신음이다.
두 손으로 내 허리를 감아안은 수잔이 내 움직임에 맞춰 탄성을 이어간다.
나는 열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수잔과 함께 폭발했을 때 절정이란 느낌을 처음 실감했다.산천(山川)이 아름답다는 표현을 자주 썼지만 나는
그때 수잔을 안고있는 그 순간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더 좋은, 더 어울리는 표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아름답다」는 그 순간의 분위기는 잊지 못할 것이다.「리, 그만, 옷 입어.」
하고 수잔이 나를 밀쳤으므로 그 분위기는 흐트러졌다.
수잔도 아쉬운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다음에, 또, 응?」옷을 챙겨입은 우리는 다시 책상에 마주보고 앉았지만 각각 외면했다.
수잔의 볼은 빨갛게 상기되었다. 이제는 손도 잡지 않는다.
「나, 갈게.」
내가 일어섰더니 수잔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더니 내 입술에 입을 댔다.
그리고는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또 만나, 내 사랑.」
조선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