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⑲
     
     「이시다는 공금을 멋대로 뿌렸다는 죄를 짓고 본국으로 잡혀갔다는데요.」
    하고 기석이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

    6월 하순의 오후, 학당에서 돌아온 나는 마루에 앉아 모처럼 찾아온 기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기석은 넉달전부터 미국 공사관의 하인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물론 내가 에비슨에세 부탁을 했다.
    이제 기석은 한달에 백미 7말을 받아 세 식구가 가장 편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내가 물었다.
    「공금을 유용했단 말이냐?」
    「제 멋대로 뿌린 것은 맞습니다.」
    해놓고 기석이 설명을 한다.

    「배오개에 하나, 제물포에 하나, 소인이 아는 것만 해도 첩 둘한테 살림을 차려주었으니까요.
    다 그 돈입지요.」
    「허어.」

    「소인한테는 한달에 백미 두말을 주고 매일 밤늦게까지 부리면서 엽전 한푼 가욋돈을 주지 않는 놈이 만나는 관리, 친위대 장교, 대감댁 후실한테까지 몇백원씩을 뿌렸습니다요.」

    「그 돈이 다 어디서 났을꼬?」

    「군에서 받았다고 합니다.」

    대번에 대답한 기석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오늘은 기석이 혼자 왔다.
    부엌에서 봉수와 봉수엄마, 복례까지 셋이 두런거리고 있고 방은 비었다.
    아버지는 평산의 누님댁에 가셨는데 요즘은 한달에 보름은 그 쪽에 계신다.
    어머니 장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머리를 든 기석이 나를 보았다.
    「나으리, 이시다하고 왕래를 한 조선인 고관들을 알려드릴까요?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집을 아니까 다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요.」

    「......」
    「모두 이시다한테 뇌물을 먹고 일본국 앞잡이 노릇을 한 역적들이지요.
    나으리께서 친구이신 경무사 나으리께 전해주시면 큰 공을 세우게 되실 것입니다.」

    길게 숨은 뱉은 내가 기석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기석의 표정에는 진심이 배어져 있다.
    그러나 지난번에 제 처가 잡혀 갔을 때는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던 놈이다.

    「놔두거라.」
    부드럽게 말한 내가 머리를 저었다.

    「그러다 조선사람 다 죽인다.
    만일 다음에는 일본군이 임금을 일본 공사관으로 모시면 어떻게 될꼬?」

    「예에?」
    당황한 기석이 눈을 껌벅이다가 곧 쓴웃음을 짓는다.

    「러시아군이 가만있겠습니까? 땅 덩어리가 일본의 수십배가 된다던데요.」

    「청은 안그런가? 백성도 수십배나 많았다.」
    말문이 막힌 기석이 어깨를 늘어뜨리더니 나를 보았다.

    「어떻게는 나으리나 경무사 나으리께 은혜를 갚고 싶어서 그럽니다.」

    「공사관 일이나 열심히 해.」

    「잡일이 쉽고 소인이 일본말을 한다고 가끔 통역도 시킵니다.
    소인이 아주 요긴하게 쓰여서 어찌나 기쁜지요.」

    「아주 잘 되었어.」
    「모두 나으리의 은혜올시다.」
    기석이 마루에 두 손을 짚고 절을 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벌써 어둠이 덮여지고 있다.

    「나으리, 다시 들리지요.」
    하더니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학당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학당을 나오시면 나으리께서는 벼슬을 하십니까?」

    「아니야.」
    내가 웃음 띈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하지만 할 일이 많아.」

    학당에 입학한지 벌써 이년 반이 지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