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익스트림(Extreme)'코너에서는 젊은 생을 마감한 가수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 1967년 2월 20일 ~ 1994년 4월 5일)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미국 워싱턴의 시애틀. 피범벅이 된 채 죽어 있는 한 남자가 발견된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자 그룹 너바나의 리드싱어인 커트 코베인이었다.

    커트 도널드 코베인은 미국의 시애틀을 근거로 한 록 밴드 너바나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중학생때부터 마리화나를 피웠을 정도로 심한 마약 중독자였고 말년에는 헤로인에 중독되어 여러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 ▲ 코트니 러브 ⓒ 코트니 러브 트위터
    ▲ 코트니 러브 ⓒ 코트니 러브 트위터

    1994년 4월 8일 자택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죽음은 무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아내인 코트니 러브가 살인청부업자를 통해 코베인을 살해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마약중독에 ‘악녀’라는 이미지는 더욱 강렬해졌다.

    커트 코베인의 성장기를 보면, 1967년 미국 워싱턴주 애버딘에서 태어났다. 커트가 태어났을 때의 가장 큰 특징은 금발머리와 담청색 눈동자였는데 눈이 워낙 이뻐서 그가 태어났던 병원 안에서도 화제가 됐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날 당시 21살이던 아버지 도널드 코베인과 19살이던 어머니 웬디였는데 그들은 1966년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하여 커트를 낳았다.

    그의 아버지는 정비소직원 어머니는 아기를 돌보며 집안일을 했다 커트가 태어날 당시에는 부모의 과잉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데 이 때문에 그의 이모 마리는 그가 항상 행복해하고 잘 웃는 아이였으며 집안의 복덩어리였다고 했다, 또한 기운차고 카리스마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커트가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데 그의 가문의 영향이 컸다 그의 외삼촌은 비치커머스라는 밴드의 맴버였고 이모 마리는 기타를 칠 줄 알았으며 큰할아버지는 테너가수였다 당시 커트는 비틀즈, 알로 거스리 등을 좋아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도 두각을 나타내는데 당시 그의 유치원 친구 토니 허쉬만은 그가 무엇이라도 그릴 수 있었으며 매우 유사했다고 회상했다. 커트가 5살이였던 즈음 그의 부모의 사이는 매우 나빠져 순수했던 커트에게 평생 동안 큰 상처를 남기게 되고 음악적인 배경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족과의 불화로인해 그는 더욱도 내성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해갔으며 밀폐된 곳에 있길 좋아하게 됐다.

    커트 코베인 사망 전, 아내 코트니 러브 사이에 딸 '프랜시스 빈 코베인'이 있었다.
    1992년 아내인 코트니 러브는 코베인과 결혼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펑크록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녀는 1998년 영화 ‘래리 플랜트’로 골든글로브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2년만에 코베인이 자살하자 마약중독·폭행 등 각종 사건에 휘말리면서 할리우드의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러브가 살인청부업자를 통해 코베인을 살해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악녀’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러브의 시어머니인 오코너는 기행을 일삼던 러브가 지난 2005년 마약소지 혐의로 구속되자 양육권 소송을 벌여왔다. 결국 지난해 커트 코베인은 사망 전 딸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설적인 록커 커트 코베인의 외동딸이 할머니 품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