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격랑속으로 ⑰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그해 7월 25일이다.
    사흘 전 갑자기 안방에서 쓰러지셨던 어머니는 내가 제중원에서 지어온 약도 드셨지만
    안색이 파랗게 변한채로 일어나지 못하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떠나기 전날의 늦은 밤,
    나는 누워있는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밤 날씨는 선선했고 바람이 좀 불었다. 방구석에 놓인 호롱의 불꽃이 흔들렸다.
    벽에 붙여진 내 그림자도 흔들린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뱉는다.
    화이팅은 어머니가 심장이 나쁘신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의 나이는 올해 예순 넷, 마흔 둘에 손주같은 자식을 낳고 지성으로 기르셨다.
    사방은 조용했다. 아마 밤 12시쯤은 되었으리라.

    앉은 채로 깜박 졸았던 나는 눈을 뜬 순간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돌아와야 된다.」

    어머니의 두 눈이 번들거렸으므로 나는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을 쥐었다.
    어머니의 마른 손이 뜨겁다. 다시 어머니가 말을 잇는다.

    「꼭 돌아오너라, 어미한테.」

    그렇지.
    어머니는 나를 잉태할 때 용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셨다.
    그래서 내 아명(兒名)이 승룡(承龍)이다.

    내가 어머니의 손을 힘주어 쥐고 대답했다.

    「어머니, 돌아옵니다. 꼭 옵니다.」

    「아가, 승룡아.」

    해놓고 어머니가 다시 눈을 감았는데 그것이 유언이 되었다.
    어머니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새벽에 돌아가셨으니까.

    다음날 함흥의 친구 댁에 놀러 가셨던 아버지가 보름만에 돌아오셨다.
    친구분 주소를 몰라 애를 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도우신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앓아누웠다.
    고열에다 땀이 나더니 온몸이 떨리는 바람에 나는 꼼짝 못하고 사랑채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절대 무리하면 안돼요.」
    문상차 왔던 에비슨 박사가 나를 진찰하고 나서 말했다.
    그러더니 눈을 치켜뜨고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잘못하면 줄초상이 납니다.」
    조선말이었으므로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알아들었다.
    내 머리맡에 앉아있던 이충구가 입맛을 다신다.

    경무사 제복의 금줄이 번쩍거리고 있다.
    「어, 거참, 선생께서도 별 말씀을.」
    해놓고 이충구도 정색하고 나를 보았다.

    「선생 말씀 명심하시게. 몸을 보중해야 어머님 은혜를 갚게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덧붙였다.
    「장례는 우리가 다 알아서 치룰테니 어머님 생각해서 움직이지 마시게.」

    조문객이 많았다.
    배재학당 동기는 물론 선생님들, 제중원의 의사들, 이충구를 비롯한 개화파 관료들,
    오지 못한 관료들은 조문품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놀라실 정도였다.

    어머니의 운구가 황해도 평산(平山) 장지로 떠난 후에
    나는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내 아들 봉수와 기석이의 딸 미자다.

    세 살짜리 봉수와 네 살짜리 미자는 금방 동무가 되더니 잘 논다.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목소리는 기석이다.
    제 처가 풀려 나온 후부터 기석이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뭇짐을 해왔고 부숴진 담장을 고쳤다. 그렇게 매일 들락거리더니 초상이 나자 제 식구까지 데려와 거들고 있다.

    나는 다시 열이 났으므로 눈을 감았다.
    문득 어머니의 유언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나는 기를 쓰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어머니한테 꼭 돌아갑니다.」

    좀 개운해진다.
    그래. 결국은 어머니한테 돌아가는 것이 인생 아니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