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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입술과 큰 갈색 눈을 가진 난발의 소년,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듯한 부스스 옷차림의 인간 군상.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와 강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17세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천재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인기가 이제는 거장 미켈란젤로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11일 문화면 기사에서 현대에 들어서 되살아난 카라바조의 명성을 재조명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카라바조의 인기가 이제는 미켈란젤로와 거의 동등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각종 구설수와 폭력사건 등에 휘말리며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이 천재화가는 생전에는 표현주의적인 화풍으로 비난을 받았고 종교적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죽은 지 400년이 지나 독특하고 선구적인 화풍으로 시대를 앞서나간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미술사가인 토론토대 필립 솜 교수는 지난 50년간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의 작품이 사용된 인쇄물들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카라바조가 미켈란제로와 동급의 화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달 시카고미술협회 강연에서 미술관 관람객 수 등 통계를 살피는 전통적인 연구방식을 버리고 기념품 등 인쇄물에 그림이 사용되는 빈도를 조사해 카라바조가 미켈란젤로와 비슷한 반열에 올랐다고 결론지었다.
카라바조의 그림 속의 인물들은 런던의 섹스숍 간판, 저명한 의학저널의 표지 장식 등에 흔히 쓰이고, 바쿠스나 골리앗 같은 등장인물은 미켈란젤로의 인물화들만큼이나 머그컵이나 컵받침 등 기념품에 흔히 사용되는 등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솜 교수는 비록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와 조각상 다비드 등을 남긴 거장 미켈란젤로의 자리를 카라바조가 밀어낸 것은 아니지만, 미켈란젤로가 속했던 이상주의적 화풍은 전후 세대에게는 이제 현실과 동떨어진 머나먼 클래식 전통으로만 다가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현실적인 근육질의 남자, 추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숭고미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표현법은 알렉산더 포프나 코르네유와 같은 문장가들처럼 경외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친근한 미술 양식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신 솜 교수는 카라바조를 현대적인 반영웅(antihero)을 표상하는 극사실주의자로 평가하면서, 전후 세대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본다.
두툼한 입술과 큰 갈색 눈을 갖고 헝클어진 머리로,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듯한 부스스한 옷차림의 인간 군상은 천상에서 방금 내려온 것과 같은 미켈란젤로의 비현실적인 인물들과 극명한 대립을 이루며 살아있는 듯한 현장감을 얻고 있다는 평가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라바조의 본명(미켈란젤로 메리시)은 그 자신이 자리를 넘보는 미켈란젤로와 같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