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말로 부모님을 위로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8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에 이같이 개탄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결코 용납돼선 안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사회적 약자, 특히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고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이다. 지난해 전국민을 경악케했던 소위 '조두순 사건' 이후 두번째다. 당시 이 대통령은 '격리'라는 높은 수위의 표현을 사용하며 흉악범죄 근절 의지를 밝혔고, 정치권은 뒤질세라 관련 법안을 내놓고 논의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나온 성과는 없었다.
이 대통령은 또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언제까지 이런 흉악범죄가 계속 돼야 하나"면서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흉악범죄를 예방하고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 처리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을 미적이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가 곧 잊혀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할 말이 없다. 지난해 7월 이후 제출된 성범죄 관련 법률안 14건은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12월 여야의원 10인이 발의한 일명 '전자발찌법(특정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정부개정안역시 손도 못댔다.
특히 피해자 이양이 실종되기 전날인 2월 23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아동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이웃 주민에게 우편으로 통보하고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범죄자의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본회의에는 상정조차 못했다. 정쟁에 빠져있던 여야가 중요 민생법안은 뒷전으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2월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눈물의 1인시위를 벌였다. 정치이슈나 지역문제가 아닌 '전자팔찌법' 처리를 촉구한 시위였다. 2005년 7월 한나라당 의원들이 제안한 이 법안은 2007년 4월에 가서야 수정처리됐다.
당시 진 의원은 "성폭력 방지 법안들이 국회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사이에 성범죄자의 재범이 늘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전자팔찌법만 통과됐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국회에서는 4,5년전과 똑같은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진 의원 등이 지난해 11월 제출한 성폭력 범죄자의 주거를 제한하고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은 여전히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그 사이 또 한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아동성폭력 범죄에 대해 내일(9일)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아동성범죄방지법의) 국회 신속한 처리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진 의원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4월 국회가 열자마자 처리가 됐으면…"이라며 "소급되는 방법은 없겠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흉악범죄는 어느 한 쪽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시민단체, 경찰, 학교, 지역사회가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면서 "모두 같은 심정으로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