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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세대?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타는 우습고 평균신장도 크지…우리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 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뮤지컬 퀴즈쇼의 주인공 이민수(이율)는 이렇게 절규한다. 그는 1983년 돼지띠, 80년대 컬러TV를 보고 자랐으며 서태지에 열광하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배워간 일명 88만원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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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퀴즈쇼' ⓒ 연합뉴스
세부적인 무대요소도 볼거리다. 3단으로 돼있는 라면집 무대는 작은 좌판으로 변신시켜 홍대 주변의 무대를 옮겨 놓은 기분이 들게 한다. 대부분의 뮤지컬이 무대 위에 세트를 구성하는 것과는 달리 퀴즈쇼는 무대 뒤 배경을 단순 철골로 구성해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했다. 여기에 조명활용도를 높여 관객의 몰입도를 배가시켰다. 이밖에 퀴즈대회 장면이나 홍대의 밤거리, 고시원에서 바라본 야경 등을 무대 뒷배경으로 해 스크린 활용도를 극대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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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퀴즈쇼' ⓒ 연합뉴스
음산하고 습습한 느낌의 배경은 취업난과 과도한 경쟁체제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자괴감에 빠진 20대의 현실을 묘사해준다. 마지막 문제의 해답을 맞혀야 할지 말지 선택에 빠진 민수의 심리를 표현한 대목에서 무대조명은 파란빛, 빨간빛 그리고 그 교집합이 된 적보라색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주인공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잘 드러냈다.
주연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주인공 민수 역을 맡은 배우 이율의 섬세한 표정연기와 안정적인 보이스는 매력적이다.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 쓰릴미 등에서 얼굴을 알린 그는 신인답지 않은 리듬 있는 연기를 펼치는데 그네를 타고 허공을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내리까는 장면이라든지, 텅 빈 채팅방을 공허하게 응시하는 모습에서 깔끔한 시선처리를 보여준다. 또, 민수와 지원(전나혜)의 듀엣곡 '우린 서로 닮았으니까'는 그들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과정을 표현한 노래로 남자 주인공의 부드러운 중저음과 여자 주인공의 낭랑한 하이톤이 어우러져 포근한 느낌을 준다.
탱고 역과 편의점 주인 역을 맡은 배우 방정식은 잘 익은 연기를 선보인다. 박정자 (상명대)교수는 자신의 저서 '시선은 권력이다'에서 소설 '퀴즈쇼'를 인용 "주인공 청년을 노려보며 야단을 치는 시선에서 청년(민수)은 냉혹한 눈빛은 본다"며 시선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배우 방정식은 그 눈빛을 잘 표현했다.
어깨를 반쯤 구부린 그는 주인공을 향해 냉혹한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그 모습은 마치 스크루지 같기도 하며 갓 사회에 발을 들인 순진한 청년을 착취하는 악덕업자 같은 눈빛과도 겹쳐진다. 퀴즈군단 마티니 팀의 탱고로 분할 때는 눈썹과 미간의 움직임이라든지 과도한 몸짓을 취하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춘성 역의 성기윤과 장군 역의 한성식 역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
- ▲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퀴즈쇼' ⓒ 연합뉴스
작가는 청춘의 본질을 '퀴즈'에서 찾고 있다. 질문하고 답을 하는 퀴즈의 과정을 통해 세상과 맞닥뜨린 청춘이 어떻게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고 어른이 돼가는 지에 관한 과정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후반에 겪는 질풍노도 이야기는 현실과 맞닿았기 때문에 10대의 그것보다 리얼하며 더욱 쓰리다. 여기에 그들이 활동하는 무대는 '제2의 사회'라고도 불리는 인터넷 공간이다. 화려한 도시와 반대되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 백수들의 모습과 이상이 좌절되는 현실은 20대 디스토피아라고 할 정도로 자조적이다.
작품 속 'Fata Regunt orbem'(파타 레군트 오르벰)이라는 곡에서 "퀴즈는 도전 퀴즈는 인생, 퀴즈는 정당한 경쟁, 퀴즈는 공정한 보상. 실력자가 돼라"고 한다. 인간은 타자 또는 사회와의 관계 맺음에서 항상 평가를 강요 당한다. 작품에서 퀴즈는 현대인이 거쳐야 하는 강제요소 또는 강하게 우리를 옥죄고 있는 제도권 사회의 통과 시험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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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컬 '퀴즈쇼' ⓒ 연합뉴스
퀴즈에서 도출하는 해답은 본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정답을 말한 주인공 민수에게 춘성이 "세상이 원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에 넌 틀렸다"고 하는 퀴즈쇼의 법칙에서 드러난다. 정답을 강요받는 사회고, 사회에 의한 정답이 맞는 세상이다.
연출자 박칼린은 "이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충고도, 삶에 대한 가르침도 아니다"며 "민수라는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그를 배출해 낸 이 사회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작품은 사회와 자아의 문제를 불편하리만큼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이 두 싸움에서 결국 개인의 패배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안다. 스물일곱 민수는 이렇듯 혼란스러운 퀴즈쇼 후 어떻게 될 것인가…?
뮤지컬 중간 중간 배우들이 퀴즈를 맞히는 장면에서 나라면 과연 몇 문제나 맞출 수 있을지 체크해 보는 것도 관객에게 쏠쏠한 재미를 줄 것 같다. 다만 수희 역의 배우 진수현은 음역이나 성량이 힘에 부쳐 불안하다는 인상을 주는 점이 아쉽다. 또 커튼콜이 너무 싱겁게 끝나버리는 감이 있으며 2시간 30분을 끌고 가기엔 극 중 재미 요소가 부족하다.
제작 신시컴퍼니 가격 4~6만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2010년 1월 2일까지. 공연문의 (02)577-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