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을 막론한 한반도 전체의 정신상황을 진단해 보자. 아시아 대륙을 등에 업고 해양세력을 앞에 두고 있는 한반도와 한반도인(人)들은 지금 어떤 정신적 증후군을 보이고 있는가? 북한은 한 포학한 산채(山砦) 두령이자 교활한 유사종교 교주의 땅, 그리고 그런 그에게 사로잡혀 있는 인질(人質)들의 비명이 메아리치는 곳이다. 이런 곳에 예지와 지성과 문명성이 존립할 수 없다. 이것이 북한의 '철학의 빈곤'이다.

     


     남한의 대한민국은 1940년대 후반의 고비사막 같은 황무지에 자유 평등 박애의 근대적인 문명성을 일구어 낸 기적의 땅이다. 반세기만에 건국, 산업화, 민주화, 지구화, 정보화를 후닥닥 끝내 버린 환상적인 나라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그래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좌파 10년’ 이후 지금은 어떤가? 김정일의 북한은 ‘거지’이면서도 큰소리 빵빵 치고, 대한민국은 ’부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거지‘한테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치지 못하고 있다. 큰 소리는 커녕 행여 김정일 심기(心氣) 건드릴세라 쩔쩔 매왔다. 이게 말이 되는가?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형이 동생한테 너그럽게 해 줘야“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 ”약한 북한에 강한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다 퍼줘도 우리가 이기게 돼 있다“ ”그래서 이런 이치를 모르는 우파는 시대에 뒤쳐진 수구꼴통이다“ ”김정일의 북한에 돈 맛을 알게끔 도와주기만 하면 그들의 의식이 바뀌어 시장 개혁 개방으로 나갈 것이다“ ”따라서 훼방꾼은 김정일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의 보수우파 ‘원리주의자들’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한 권력 핵심 인사는 신문 이터뷰를 통해 자유민주 진영을 마치 극우 이슬람 스타일의 ‘원리주의자’로 몰았다고 한다. 그런 엉터리가 이른바 ‘중도실용주의’인 모양인가?

     


     도대체 왜 이렇게 ‘거지’가 왕왕 큰 소리 치고 ‘부자’가 속절없이 코 꿰어 가는 기구망측한 ‘꺼꾸로’가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 마디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 17년이 뭘 잘 몰랐기 때문이다. 뭘 잘 몰랐나? 상무((尙武) 정신, 투철한 가치관, 죽을 각오가 없으면, ‘부자’가 '거지'한테 물어뜯길 수 있다는 철칙을 모른 것이다. 여기서도 '철학의 빈곤'은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다.

     


     김정일은 그러나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는 실패자지만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상무정신을 동원해 자신의 가치관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면서 그것을 위해서는 핵전쟁도 불사한다는 기세로 나왔다.

     


     반면에 오늘의 대한민국 정권은 죽을 각오도, 철학도, 이념도, 역사관도 없이 그저“돈이면 다다”는 투의 장사치적 낙관론과 얄팍함으로 임하고 있다. 결과는 뻔하다. 돈 없는 이념 특공대 집단이 돈 많은 장사치 집단, 정신적 날탕집단, 가치론적 맹물집단을 가지고 놀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상무정신(尙武精神), 치열한 사생관(死生觀), 투철한 역사관 없는 지도자와 국민은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북한이 유사종교 교주가 지배하는 군사화 된 거지부대의 상무(尙武)집단이라면, 대한민국은 배부른 장사꾼의 문약(文弱)이 지배하는 ‘상무(尙武) 포기‘의 날라리 세상, 딴따라 세상, 혼(魂) 빠진 오합지졸의 세상이다.

     


     김정일은 우리의 그런 약점을 일찌감치 간파했기에 저처럼 오마방자 하고 기세등등하게 나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처럼, 무(無)철학, 몰(沒)가치, 몰(沒)역사, 경제 환원주의(economic reductionism) 등의 편의주의적 방편만으로는 결코 향유할 수 없다.

     


     돈 있어도 혼 빠지면 망하고, 돈 없어도 혼 있으면 이긴다. 김정일에게는 돈은 없어도 사이비 종교적 신념과 “목숨을 던져“는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남한 보수파에게는 돈은 있어도 ”목숨을 던져“가 없다. 이게 오늘의 한반도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이길 작정인가, 질 작정인가? 지려면 ‘김대중-노무현 유화주의’와 이명박 식, 몰가치(沒價値)적 ‘실용주의’로 계속 나가면 된다. 이기려면 싸움에 능한 신념의 장수(將帥)였던 맥아더, 아이젠하워, 몽고메리, 백선엽처럼 나가야 한다.

     


     도구적 실용주의의를 이용할 줄 아는 가치론적 신념, 그리고 가치론적 신념에 봉사할 줄 아는 도구적 실용주의를 하나로 결합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나 지금 철학도 가치관도 역사관도 뺀 얼치기, 겉 멋, 속류(俗流), 비속(卑俗) 실용주의로만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