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으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보람이죠"

    소프라노 손순남(52) 교수는 22일 "강연 메시지나 거창한 백 마디의 말보다 노래를 부르면서 얻는 감정의 정화가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13년간 서초구청에서 가곡강좌를 해온 손 교수다.

  • ▲ '여성이여는 미래'주최로 서울 논현동에서 열리고 있는 '손순남의 가곡아카데미 음악으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삶'을 강연하고 있는 손순남 교수
    '여성이여는 미래'주최로 서울 논현동에서 열리고 있는 '손순남의 가곡아카데미 음악으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삶'을 강연하고 있는 손순남 교수

    '성악'이나 '가곡'이라고 하면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게 일반인들의 자연스러운 심정일거다. 그런 탓에 손 교수는 현재 '여성이 여는 미래' 주관으로 서울 논현동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가곡 교실을 일반인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고려대 아주대에서 '세계의 가곡' 강의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가곡 교실처럼 일반인들과 만나며 음악을 곳곳에 전파하는 일이 더 재미있다고 한다.

    그는 음악을 통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매너'를 강조했다. 일반인들에게 '음악'이라고 하면 으레 회식 후 스트레스 해소용 '노래방 뒷풀이' 문화가 전부일텐데…그 말에 손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손 교수는 "노래방에서 격하게 스트레스를 표출하고 발산한다고 삶이 아름다워 질까요?"라고 반문했다.

    "오히려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발성을 하고, 가곡의 가사와 하모니를 음미하는 가곡교실을 통해 감정이 순화되는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행복들이 하나 둘 우리 주변으로 전달될 때 세상도 아름다워 질 수 있지 않을까요"

    부르는 사람은 혼자 열창하고 그 외 사람들은 자신이 부를 곡만 찾고 있는 게 대부분의 노래방 문화인데 손 교수는 이점도 지적했다. 음악에 대한 '문화'와 '매너'가 갖춰지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노래를 잘 하고 못하는 것을 떠나서 정중하게 갖춰진 모습으로 온 마음을 다해서 부르는 게 진정한 매너"라고 말했다. 또 노래를 부를 때 정중한 태도와 매너를 보여주면 듣는 사람에게도 전달 돼 '아! 저 사람이 저런 노래를 부르는 구나, 어떤 식으로 살아 왔구나'라는 게 노래 한 자락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일부러 무대에 서게 하는 일을 시킨다. 그는 "무대에 서 본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시도"라고 했다. 처음엔 수강생들도 무대에 선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아 했다. 남 앞에 나선다는 두려움, 객관화된 나를 마주하는 어색함 때문이었다. 그러던 수강생들이 자꾸 무대에 서면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젠 그 모습이 제법 프로 성악가답게 보이기도 한다. 

    "무대에 서게 되면 옷 매무새도 다시 다듬어보고 짧게 걸어 나오면서도 다소 조심스러워지잖아요. 보여 지는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호감을 갖게끔 할까라는 고민도 하구요. 이런 과정들이 다 '나를 객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 ▲ 가곡아카데미 수강생들
    가곡아카데미 수강생들

    일반인 40명 정도로 구성된 가곡교실에는 장애우 여학생도 있다. 발음도 잘 안 되고, 노래도 어렵게 부르지만 성악 교실을 통해 또 하나의 문화를 즐기고 있다. 손 교수는 "한 장소에서 어우러져 노래로 다 같이 하나가 된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흔히 '가곡 강좌'하면 주부중심의 문화센터 같지만 남성 수강생들도 꽤 된다. 수강생 중에는 한때 성악가를 꿈꾸던 사람도 있고, 흔히 노래방에서 '판 깨는 레퍼토리'라고 야유 아닌 야유를 받으면서도 가곡을 부르는 클래식 애호가도 있다. 손 교수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향유하면서 나만의 '취미생활'로 만들어 가는 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13년 동안 일반인들에게 음악을 강의하면서 겪은 일 중에 인상 깊은 일도 많았다.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나와서 열성적으로 성악을 공부한 남성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하루 빠지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다음 주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그 분에게는 성악을 배우는 일이 즐거움이었을텐데... "손 교수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자신이 배출한 성악교실 제자 중 정년퇴임한 교수나 60세의 고령 수강자들이 아마추어 독창회를 열 때 '멋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미국 피츠버그 듀케인음대 재학당시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를 능가하는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그다. 작년까지는 인사동 쌈지길에서 고려대학생들과 '손순남과 함께하는 낭만호랑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가곡 정기공연을 했다. 당시 공연에서는 가곡뿐만 아니라 트롯트 풍의 '그리운 금강산' rock스타일의 '오솔레미오' 가야금과 해금이 어우러진 '이힐리베디히'등 실험적인 곡들이 쌈지길을 가득 채웠다.
  • ▲ 가곡 강좌에 수강하고 있는 남성회원들(위), 손순남 교수가 진행하는 가곡강좌 모습(아래)
    가곡 강좌에 수강하고 있는 남성회원들(위), 손순남 교수가 진행하는 가곡강좌 모습(아래)

화려한 무대에서 오색의 드레스를 입고 성악을 하는 게 더 멋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손 교수는 "정형화된 기존의 음악회 장소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회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또 "일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클래식한 음악회를 접하게 되면서 무대를 통한 매너를 배우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신나고 좋은 문화체험"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국의 가곡을 부를 수 있다는 게 그렇게 큰 기쁨일 수 없더라"고 했다. 말을 통해 사람의 생각과 내면을 읽을 수 있는데 외국 노래는 아무리 좋아도 한번 외우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반면 우리말로 된 가곡은 한국인에게 대단한 깊이를 준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내년 6월에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우리나라 꽃들이 피어있는 곳을 배경으로 야외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3대가 같이 부르는 클래식 음악회'도 생각 중이다. 말 그대로 시어머니 며느리 손녀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는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손순남의 가곡아카데미 음악으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삶'
그가 진행하는 강좌 제목이다. 10월도 끄트머리에 접어든 때, 그 이름처럼 '음악으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