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창건 KLO 기념사업회 회장 ⓒ 뉴데일리
    ▲ 이창건 KLO 기념사업회 회장 ⓒ 뉴데일리

    “이승만 대통령은 KLO부대에 남다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6.25 전쟁 중 가장 빛나는 승리의 하나인 인천상륙작전이나 화천-철원지구 승리, 그리고 반공포로 석방 역시 KLO부대의 활약이 큰 역할을 했다.”

    21일 오후 서울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홀에서 열린 우남이승만연구회 제48차 콜로퀴엄. ‘이승만 박사와 KLO부대’를 주제로 강연한 이창건 KLO 기념사업회 회장은 한국전과 그 후 정치무대에서의 KLO 활약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KLO(KOREA LIAISON OFFICE·한국연락사무소)부대는 중국 남의사(藍衣社)를 본떠서 민간반공단체인 서북청년회가 별도 조직한 ‘백의사(白衣社)’라는‘대북첩보공작부대’가 모체가 됐다. 추후 맥아더사령부 요청으로 모든 민간 반공단체가 통합·발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25 동란이 발발하자 연합군 직할 첩보공작부대로 변신, 대북첩보공작과 유격작전을 수행하며 5000~1만여 명의 대원들이 반공전선에서 산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6.25 당시 밴 플리트 미군 사령관에게 ‘전쟁 후를 생각해 물과 전기를 공급해줄 화천을 꼭 탈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밴 플리트는 산악전에 강한 중공군이 주둔하고 있는 화천으로 병력 전개를 꺼리다가 이 대통령의 요청이 계속되자 인천상륙작전 때 팔미도를 탈환하고 등대를 밝힌 KLO 최규봉 대장에게 화천지역 정탐을 맡겼다.

  • ▲ KLO 최규봉 대장 ⓒ 뉴데일리
    ▲ KLO 최규봉 대장 ⓒ 뉴데일리

    최 대장은 성공적으로 화천에 침투해 적정을 보고했고 이 정보로 결심을 굳힌 밴 플리트가 공격을 감행, 중공군 1만3000명을 사살했다. 보고를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크게 기뻐하며 화천 저수지를 파로호(破虜湖)라고 직접 이름 지었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또 “1953년 반공포로 석방 때도 이 대통령은 KLO에게 특수임무를 부여했다”고 증언했다. 원용덕 헌병사령관에게 구출작전을 지시하며 그의 병력의 각 소대마다 KLO대원을 2명씩 추가배치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 이 회장은 “이 대통령이 KLO의 특성 상 반공포로며 대만행을 원하는 중공군 포로를 잘 구출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우남이승만연구회의 콜로퀴엄은 매달 셋째 월요일 오후 3시에 서울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