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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보던 아내가 "박재범이 누군지 알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기에 누구냐?"고 반문했더니 한국에서 대단히 인기가 있는 재미동포 가수인데 한국을 욕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다가 결국 2PM이라는 소속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 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저의 첫 감정적인 반응은 한국인들이 또 집단 발동이 걸렸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욕을 심하게 했기에 그토록 심한 인격적 몰매를 맞고 한국을 떠나야할까 하는 생각으로 욕한 내용을 알아 봤습니다. 박재범씨가 한국을 비난했다는 글 내용을 읽으면서 "한국인들이 또 발동이 걸렸구나" 하고 점잖게 느꼈던 제 생각은 "한국인들이 또 집단 발작 증세가 시작됐구나" 하는 비하 감정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면 수십 배는 더 몰매를 맞고 수십 번은 쫓겨 났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하는 냉소를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박재범을 이토록 심하게 두들기는 한국인들을 향해 저는 "당신들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박재범을 떠나게 한 한국인들, 참으로 부끄러워해야할 못난 사람들입니다.
오래 전에 유승준이 한국에서 쫓겨날 때 저는 한국의 인터넷에 반론의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이름과 신분을 밝힌 뒤, 유승준이 아무리 잘못했기로서니 이렇게 지독한 몰매를 주면서 쫓아내서야 되겠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인터넷에 몰려든 반론은 비판이 아니라 집단 욕설과 저주와 폭력, 인격 살인이었습니다. 밖에 나와서는 주뼛 거리면서 이불 속에서 활개 치는 못난 아이처럼 익명의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한국인은 별 희한한 욕을 다 했고 어느 젊은이는 "내가 시카고에 가서 네 대갈통을 방망이로 때려 죽이겠다"는 용감한 말까지 했습니다. 분명이 제 아들 뻘 나이되는 젊은이들의 폭언을 들으면서 한국 의식이 잘못 가도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한국인들이 유승준에게 한 행동은 잘못 된 것이었고 유승준을 입국 거부까지 한 한국의 처사는 잘못되었다는 당시의 생각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유승준이 군대 가겠다는 약속을 안지키고 미국 시민권을 받은 것은 잘못된 것이었고 문제를 야기시킨 책임은 유승준에게 있지만 그것을 대응하는 한국인의 반응은 유치했고 한국 정부의 대응은 치사했습니다. 아량과 관용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지독한 열등주의자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 박재범 사건을 보면서는 더욱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유승준은 잘못한 것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야 했지만 박재범의 경우는 매맞을 거리도 안되는데 몰매를 맞았습니다. 박재범이 4년 전에 했다는 한국 욕은 욕도 아닙니다. 그걸 욕이라고 하면 욕이 너무 무색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간 틴에이저가 한국에 대해 불평을 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입니다.
문화가 다른 곳에 처음 갔을 때, 그것도 대접 받거나 초청받은 입장이 아니라 살기위해, 경쟁하기 위해서 갔을 때는 말할 수 없는 문화적 충격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 과정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지 않는 젊은이는 성인군자에 가까운 마음을 가졌거나 감각이 둔한 바보입니다.
미국에 이민 오거나 유학을 온 한국인이 미국에 대해 한 번도 불평이나 욕을 안 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의 감정이 없는 둔한 기계입니다. 저는 미국에 살면서 수없는 갈등과 수많은 욕을 하고 미국과 싸우면서 제 이성과 감성을 성장시키고 저의 편견과 독선을 다듬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한국 유학생과 이민자가 미국 욕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욕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고 적응과 성장의 과정입니다. 미국 밖에 몰랐던 박재범이 가수가 되겠다고 한국을 갔을 때 그 18세 된 소년이 낮선 한국 땅이 아름답고 한국이 위대하다고 말했다면 박재범은 뛰어난 가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없거나 위선자입니다.
가수나 예술가는 남다른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 감성이 그들을 독보적 예술가로 만드는 힘이 됩니다. 더욱이 한국의 연예계는 썩고 곪은 물이 코를 찌르는 복마전입니다. 한국의 부패와 부조리와 모순과 부끄러움을 가장 극적으로 압축한 곳이 바로 한국의 연예계입니다. 돈 상납, 성 상납, 인격 상납을 하지 않고는 스타가 되기 어려운 썩은 땅에서 톱스타가 되겠다고 발버둥치는 틴에이저가 한국 욕을 안했다면 그 아이는 정신병원으로 가야 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음식만 배설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분노도 배설해야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배설을 통해 소년은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고 숙성한 장년으로 성숙됩니다.
박재범의 매니저인 박진영은 성명서를 통해 "4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재범이는 참 불량하고 삐딱한 아이였다"면서 "재범이는 불량하기는 했어도 음흉했던 적은 없다" 면서 "재범이에게 지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박진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박재범이 한국에 와서 힘든 불평을 한 것과 불량하고 삐딱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고, 불량하기는 했어도 음흉했던 적은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불량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불평을 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인지 불량한 것은 괜찮고 음흉한 것은 나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아리송합니다.
박진영씨가 알아야 할 것은 문화가 다른 곳에 와서 불평을 하거나 비판을 하는 것은 불량한 것과 상관없고 모범적이고 성실한 사람에게도 자연스런 현상이란 것입니다. 음흉하면 뛰어난 가수가 될 수가 없다는 뜻인지 몰라도 훌륭한 가수가 되는 것과 음흉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재범이에게 지금 자기 자신을 되돌아 반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박진영씨의 말은 사리에 적합지 않은 표현입니다. 박재범이 뭘 반성하라는 것입니까.
박재범에게 동정적인 한국인들도 "지금도 아니고 4년 전에 한 말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4년 전에 한 말을 가지고 입에 거품을 무는 무지한 떼 군중 보다는 이성적이지만 이 말도 적합지 않습니다. 박재범이 지금 그런 욕을 한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하물며, 지금도 아니고 4년 전인 18세 때 인터넷에 쓴 넋두리를 지금 와서 끄집어내어 매타작을 하는 것은 치졸하고 유치합니다. 지금 그런 불평을 해도 괜찮아야 한국이 괜찮은 나라입니다.
뒤에서 욕하고 불평하는데 한국인들은 세계적 수준입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욕하고 폄하시키는데 한국인은 첫 손가락에 꼽힙니다. 의견이 다르거나 자기편이 아니면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꾸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난도질을 하는 것이 많은 한국인의 문화입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대통령을 향해 쌍욕을 하는 나라가 한국이고, 자기 나라를 비하시키는 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한국인 아닙니까. 미국이 9.11을 당했을 때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미국인들 잘 난체 하더니 당해서 싸고 고소하다고 악담을 퍼부었던 사람들이 한국인입니다. 그런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 욕을 조금 하면 벌떼처럼 불침을 들고 길길이 뜁니다. 일본 학자가 일본을 비판하고,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말하면 양심적이라고고 신주처럼 모시면서 외국인이나 재미동포가 한국을 비판하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열등의식입니다.
자신감이 있거나 포용심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비판에 초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가슴이 있어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북한이나 김정일을 조금만 비판하면 입국 비자를 주지 않고 "북조선의 적"이라고 악을 씁니다. 북한의 열등의식, 자격지심 때문입니다. 남한은 북한이 아닙니다. 현대 자동차가 세계적 수준이 되어 미국 거리를 질주하고 삼성과 LG 셀 폰과 전자제품이 미국인들의 찬사를 받고 한국 드라마와 음식에 빠져드는 미국인들이 급증하는 선진화 시대에 한국 비판을 조금 했다고 쌍심지를 켜는 것은 스스로의 선진성을 실추시키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세계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선진화로 가는 길은 상품이나 드라마 만으로 가능치가 않습니다. 문화와 의식, 감성과 이성이 선진화가 되어야 합니다. 의식 문화가 선진화 되지 않으면 셀 폰과 자동차의 선진성을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졸부가 깨우치지 않으면 재산을 탕진하고 맙니다. 한국인들은 욕을 먹을 줄 아는 아량, 비판을 대담하게 들을 수 있는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톨러런스"(tolerance)는 민주화, 선진화로 가는 가장 기본적인 요체입니다. 독재자들이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속이 좁고 마음이 깊지 못한 사람들이 토러런스- 관용에 인색한 것은 자신감이 없고 열등의식에 허덕이기 때문입니다.
유승준이나 박재범 사건이 났을 때 많은 한국인이 내 뱉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거나 "왜 남의 나라에 와서 돈을 버느냐" 하는 질타입니다. 2세 연예인들이 조국에 들어가 연예 활동을 해서 돈을 벌고 사업가들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 하등 잘못 된 것이 없습니다. 미국 동포들이 한국으로 가고 한국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돈과 인기를 얻기 위해 미국에 오는 것은 한국의 대기업이 물건을 팔기위해 시장개척을 하고 한국 정부가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홍보를 하는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미국과 한국 서로에 이익이 되고 서로가 좋은 것입니다.
한국의 골프 선수나 야구선수, 연예인이 돈과 명성을 꿈꾸면서 미국에 진출하는 것을 배 아파하거나 나쁘게 생각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수준을 높여 준다고 높게 평가합니다. 이들 한국인이 미국을 비판하거나 욕을 했다고 해서 입에 거품을 물면서 매타작을 하거나 쫓아내지 않습니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 매너가 거슬리는 사람이 있어도 몰매를 주지 않습니다.
김병현이 미국 야구장에서 상스런 손가락 욕을 했지만 미국인은 매타작을 안 했습니다.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눌렀을 때 미국인은 배 아파하지 않고 무명의 양윤용이 성취한 장한 쾌거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습니다. 양용은이나 박찬호가 인터넷에서 미국에 대한 불평을 했더라도 미국인이 냄비물 끓듯 분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30년 전 일본 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하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가 고전을 하자 분노한 디트로이 노동자들이 일본 자동차를 때려 부수고, 야구 방망이로 중국인을 일본인으로 잘못 알고 때려 죽여 사회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못나고 무지한 미국인을 통해 미국은 자성하고 교정을 해 나갑니다. 한국은 유승준이나 박재범 같은 사건을 통해 감정적 소란으로 끝내지 말고 무엇이 한국의 문제인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니면, 박재범 사건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한국 의식은 퇴보될 것입니다.
해외에 사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박재범 논란에 꼭 하고 싶은 말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해외 동포를 비뚤어지고 꼬여진 사시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인 2세들이 조국에 들어가 연예 활동이나 사업을 하고 기술과 학문으로 참여하는 것을 배 아프거나 아니꼽게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말로는 해외 500동포가 민족의 일원이고 민족의 자산이라고 말하지만 마음 속 깊이는 비비 꼬여진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조국을 등지고 떠난 사람이란 삐뚤어진 식이 많은 한국인 가슴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툭하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라, 한국의 병역 의무를 해라 하는 편협성과 배타성을 보여 줍니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학자나 과학자를 유치하고, 출중한 연예인이 활동하는 것은 한국의 학문과 문화의 수준을 높여주고 한국이 선진화로 가는 것을 도와줍니다. 해외 동포는 한국의 든든한 버팀목과 후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을 민족의 자산으로 만들고 미래의 동반자로 삼으려면 한국인이 이들을 진정한 동포로 받아들이는 아량과 관용과 세계적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편협하고 폐쇄적인 국수주의로는 이들 해외 동포를 조국과 등지게 만듭니다. 한국은 더 많은 친구가 필요하고, 해외 동포는 친구를 넘어서는 민족의 일원으로 조국을 돕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해외 동포를 향해 가슴을 열어야 합니다. 박재범 사건은 편협하고 폐쇄적인 한국을 보여준 부끄러운 한국인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