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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308석을 확보하며 집권 자민당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이에 따라 지난 1955년 양대 보수정당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창당된 자유민주당 장기집권 체제는 54년만에 막을 내리고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개표가 마무리된 가운데 NHK 등 일본 언론들은 민주당이 중의원 전체 480석 중 308석(지역구 221석, 비례대표 87석)을 확보, 단독 과반수(241석)은 물론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다수를 장악하여 상임위원장을 독점할 수 있는 절대안정 다수의석(269석)까지 단독으로 차지하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연립정권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는 사민당(7석), 국민신당(3석) 등의 의석까지 합칠 경우 개헌선(320석)에 육박하는 318석을 확보하는 상황이 되었다. -
- ▲ 기자회견 중인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 ⓒ 뉴데일리
한편, 자민당은 총 300개 의석이 걸린 지역구에서 64석을 획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 끝에 비례대표 57석을 포함 총 119석을 얻는데 그쳐 종전 의석수 300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개헌저지선(160석)마저 무너지는 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또한 자민당과 연립정권 파트너였던 공명당도 오오타 대표가 낙선하는 등 지역구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부진 속에서 21석을 획득하는데 그쳐 종전 의석수(31석)에서 크게 후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민·공명 보수정당의 합산 의석수는 140석에 그치며 종전 의석수(331석)에서 200석 가까이 줄어들었다.이밖에 공산당은 기존 9석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기타정당 및 무소속이 13석을 차지하였다.
총선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오후 10시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는 당 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뜻이 마침내 결실을 보아 정권교체를 이루게 됐다"며 "사민당 및 국민신당과의 연립정권 구성 협의를 즉각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정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참패를 기록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끝내 자민당에 대한 불만을 씻어내지 못했다"며 "당원으로서 당의 재건에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혀 총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의 민주당의 압승 및 자민당의 참패는 일찌감치 예견되었다. 선거 직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40% 전후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20% 전후에 불과한 자민당에 두 배 가까이 앞섰다. 특히, 투표가 마감된 후 실시된 출구조사에서 대다수 언론들이 민주당이 300~320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하는 등 사실상 승부의 추는 기울어져 있었다. 일부 언론은 민주당이 단독 개헌인 320석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을 완파하고 정권교체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민당 장기 지배로 인해 빈부격차나 도시와 농촌 등 지역 간의 격차가 심해지고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하면서 민심이 이탈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명치시대부터 지속되어온 관료주의 병폐를 극복하고 국민의 여론이 수렴되는 정치구조를 만들겠다는 '권력을 관료로부터 국민에게로' 구호가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개혁 정책이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 등 양극화에 따른 구조적 문제를 증폭시킨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등 두 명의 총리가 책임정치를 구현하지 못하고 단명으로 끝났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또한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거듭하며 일본 국민들과의 소통에 실패하는 등 자민당의 잇따른 자충수에 따른 반사이익도 상당부분 작용했다.
자만당 내 소수파벌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며 총리 자리에 오른 아소는 "취임 직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상황에서 정파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당 원로들의 '조기총선 실시' 주장을 묵살한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은 수많은 원로들이 민주당 정치신인들과의 싸움에서 패배, 정권교체 뿐아니라 세대교체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후쿠오카 2구의 야마자키 (山崎拓) 전 자민당 부총재, 군마 2구의 사사가와 (笹川尭) 자민당 총무회장, 홋카이도 11구의 나카가와(中川昭一) 전 재무금융상, 이바라기 1구의 아카기 (赤城徳彦) 전 농무상, 호리우치(堀内光雄) 전 통산상, 야나기사와(柳沢伯夫) 전 후생노동상, 나카야마 (中山太郎) 전 외무상, 큐마(久間章生) 전 방위상 등이 모두 낙선했다. 카이후(海部俊樹) 전 총리도 지역구에서 고배를 마셔 정계를 은퇴했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하토야마 대표는 오늘 중으로 '정권이행팀'을 구성, 자민당으로부터의 정권 인수 작업에 공식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토야마 대표는 오는 15일께 열리는 특별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하토야마 정권은 선거 과정에서 제시했던 예산의 전면적인 재편성을 통한 복지분야 지원 확대 등의 정책을 착실하게 추진하면서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의 과반수를 확보해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기초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반면, 지난 1993년 과반수 획득 실패로 10개월간 야당 경험을 했던 자민당은 앞으로 제1야당으로서 총재직 사퇴의사를 밝힌 아소 총리의 후임 선출 등 지도부 개편을 통해 당력을 재정비하고 민주당을 견제하면서 재기를 도모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