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호정 연세대 교수 
    ▲ 강호정 연세대 교수 

    과학기술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평화적인 사용을 강조하지만 전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알프레드 노벨이 굳이 과학상이 아닌 평화상을 만든 이유는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 사용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것에 죄책감을 느낀 탓이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나로호 발사도 군사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로켓 발사 기술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내비게이터, 구글 어스 등이 모두 핵전쟁에 대한 대비나 지상의 적을 탐지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다.

    군사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여러 문제들과 과학기술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증가함에 따라 기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은 안보 문제가 되었다. 엊그제 모라꼿 태풍의 피해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대만의 예는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또 이번 신종 플루 백신 확보에서 보듯 생명과학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라 국민의 삶과 죽음이 갈린다.

    이렇게 위협적인 얘기들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각양각색의 정치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가지 동일한 정책이 있었다면 그것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의 부흥에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연간 연구개발 투자액은 30조원이 넘어 세계 7위권이며 GDP대비로는 세계 3위권이다. 이런 중요성과 정부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인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는 '이공계의 위기'라는 용어로 잘 표현되고 있다. 자료를 살펴보면 이공계 졸업생의 평균 임금이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의 평균 임금이나 취업률과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IMF 시절에 학습된 부정적 이미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공계 공부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지는 보수와 낮은 직업 안정성, 수학과 과학 과목의 난해함과 편한 삶을 찾으려는 사회적 경향 등이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사실 이공계 기피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국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또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나 법대로 모이는 현상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혹자들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자의 수가 공급과잉이고 시장에 맡기면 저절로 해결할 문제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일정한 수와 수준의 과학기술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국 군대가 없어 용병을 들여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와 달리, 강제로 과학기술인을 육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수한 자원의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려면 교육에서 사회 제도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방안은 어려서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계로의 진입에 대한 결정은 어린 나이에 하게 된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즉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과 같은 학문을 즐겁게 배우고,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자의 처우 개선이다. 여기서 처우 개선이란 단순히 연봉을 강제로 높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의미한다. 다행히 정부에서 고위공무원단의 이공계 비율을 30%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뿐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해 훈련된 인재들이 그렇지 않은 졸업생보다 더 논리적이며 업무능력도 뛰어남을 깨달아야 한다. 외국계 유수의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는 전공과 관련 없어 보이는 이공계 박사들을 경영학 업무를 위해 특채하고 있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 교육의 혁신 방향도 중요하다. 단순히 기업의 요구에 맞추어 도구 학문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 구조와 수요는 몇 년 단위로 바뀌는데 거기에 맞춘 내용만 가르친다면 10년 후에 그 과학기술자는 어느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글쓰기를 포함한 자기표현의 수단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 융합적인 학문 분야의 개척과 교육 등이 필수적이다.

    더 이상 과학기술자들을 배고픔을 참으며 힘든 일을 수행하는 이상한 집단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학기술자들은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예술가와 같이 창의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영어로 예술을 의미하는 'Art'라는 단어의 어원이 기술을 의미하는 라틴어 'Ar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과학기술자는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며, 성공하면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킬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