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가 통일부 등 우리쪽 공식 통로를 배제한 채 임동원, 박지원 씨 등에 직접 조문단 파견의사를 통지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성에 대한 공공연한 능멸이요 모독이다.

    조문단 파견 자체는 정부도 “반대할 이유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당국은 마땅히 우리 정부의 공식 창구에 남행 의사를 전달했어야 했다. 북한의 이런 ‘통민봉관(通民封官)’ 술책은 앞으로도 우리정부와 국민을 이간시키고 정부를 고립시키기 위한 ‘반보수 진보대연합’의 상투적인 전술로 지속될 것이 뻔하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이에 대해 소극적, 미온적으로 대하는 탓으로 이명박 정부 스스로 자체의 입지를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실용’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해서 그런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어땠던 그것이 마치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편법(便法)주의처럼 작동하고 있는 한 징후인 셈이다.

    이래서는 정부의 체통도 설 수 없고 국가와 국민의 준거(準據)도 확립될 수 없다. 나라다운 나라라면 일정한 룰(rule)의 배타적인 집행자로서의 확고한 인정을 내외로부터 받을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 문제는 국장과는 다른 차원에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할 국가의 주권에 관한 사항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설령 '좋은 동기'로 온다고 쳐도 프로토콜에 맞지 않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한다는 것은 ‘좋은 동기'를 악용하는 ’좋지 않은 동기'가 잠재돼 있음을 반영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매사 이런 식으로 왕따 당하고 뒤통수 맞으면서도 그냥 헤헤헤 하며 적당주의로만 임할 경우 정부로서의 권위와 권능을 하나 하나 상실해 갈 것이 우려된다. 제 밥그릇은 제가 찾아먹어야 한다고, 정부와 대통령은 제 체통을 제가 챙겨야 한다.

    더 걱정인 것은 이명박 정부만 권위와 권능을 잃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대한민국과 그 국민도 앉은 자리에서 함께 이등병으로 강등 당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칠칠맞지 못하면 국민이 망신당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