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무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의 최동원과 선동렬의 강속구 대결, 김성한과 김용희의 장타 대결, 김응룡과 강병철의 용병술 대결... 80년대 한국 프로야구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 꿈꿔보았을 장면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염종석과 조계현의 에이스 대결, 전준호와 이종범의 도루 대결, 박정태와 한대화의 결승타점 대결도 야구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기아(해태)와 롯데는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이 없다. 더욱 아쉬운 것은 기아가 우승(83년, 91년)한 바로 다음 해에 롯데가 우승(84년, 92년)을 차지한 경우가 두 번이나 있는 등 비슷한 시기에 팀이 전성기를 구가했음에도 정작 두 팀이 우승을 놓고 다툰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기아는 지금까지 한국시리즈에 9번 진출하여 모두 우승을 차지했고, 롯데도 우승 2번을 포함 4번 시리즈에 진출했다. 이쯤되면 두 팀이 지독하게도 한국시리즈 궁합이 안 맞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실제로 기아는 9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동안 LG(83년, 97년), 삼성(86년, 87년, 93년), 한화(88년, 89년, 91년), 현대(96년) 등과 맞붙었지만 프로야구 원년멤버 중에서는 롯데‥두산 두팀만 빗겨갔다.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한 전체 포스트시즌을 놓고보면 기아와 롯데의 '엇갈린 만남'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기아는 1982년부터 2008년까지의 26시즌 중 포스트시즌에 16번 진출했고, 롯데는 7번 진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만난 것은 딸랑 한번 뿐이다.

    1992년 페넌트레이스 3위였던 롯데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2연승으로 꺾은 후 플레이오프에 직행해있던 2위 해태와 5차전까지 가는 피말리는 접전을 벌인 것이다. 결국 3승2패로 해태에 승리를 거둔 롯데가 페넌트레이스 1위팀 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있던 빙그레(한화)마저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처럼 포스트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서로 인연이 없었던 두 팀이지만 2009년에는 두 팀이 포스트시즌 혹은 한국시리즈에서 잇따라 만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 ▲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장면 ⓒ 연합뉴스
    ▲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장면 ⓒ 연합뉴스

    최근 용병투수들의 호투 및 김상현과 최희섭의 불방망이에 힘입어 9연승을 기록하고 있는 기아는 그야말로 '공포의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하위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건너갈 것 같던 기아는 6월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7월들어 SK와 두산의 동반부진을 틈타 상위권에 진출했고, 결국 8월들어 1위를 차지하더니 이제는 그 기세를 더욱 굳혀나가고 있다. 뜻밖의 돌발변수가 없는 한 한국시리즈 직행을 충분히 노려볼만한 상황에까지 와있다.

    롯데 또한 최근 상승세가 한풀 꺾이기는 했으나 시즌 초반 최하위였던 상황에서 연승을 거듭하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송승준(11승)-조정훈(10승)-장원준(9승)의 안정된 선발진과 홍성흔과 이대호의 맹활약에 힘입어 지난 92년 이후 17년만의 우승을 노리고 있다. 4강 진출을 놓고 다투던 3팀 중 우리 히어로즈와 LG트윈스는 사실상 탈락한 상황에서 이제 롯데는 1게임차로 바짝 뒤쫓고 있는 삼성과의 마지막 승부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기아가 현재의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가 페넌트레이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다소 주춤했던 롯데가 다시 상승세를 그리며 포스트시즌에서 '돌풍의 핵'으로 부상할 경우 두 팀은 프로야구 출범 이래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에서 '꿈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프로야구 팬들은 물론, 한국야구위원회(KBO) 입장에서도 기아-롯데전은 최고의 한국시리즈 흥행카드로서 손색이 없다. 대표적인 야도(野都, 야구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광주와 부산에 연고를 둔 두 팀이 피말리는 접전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특히, 토종(조범현 기아 감독)과 외국인(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의 지략 대결, 순수 국내파(이대호)와 메이저리거(최희섭)간의 거포 대결, 김상현과 홍성흔의 '럭키보이' 대결 등이 큰 화제를 불러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와 롯데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지금 야구도시 부산과 광주는 술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