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별들의 굴욕이라 할 수 있다.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 앞에서는 김형오 국회의장부터 각 정당의 대표를 모두 볼 수 있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 등 주요 정치인들이 이곳을 찾았다.

    취재진은 입구를 거의 봉쇄할 만큼 많았다. 그러나 이 수많은 취재진이 기다린 사람은 앞서 거론된 이들이 아니다. 맨 먼저 이 총재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총재를 붙잡는 기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 총재는 그냥 말없이 지나갔다. 곧바로 박 대표가 도착했다. '쇄신'의 중심에 서 있어 주요 취재대상이지만 아무도 박 대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박 대표 역시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한 채 취재진 사이를 지나갔다. 이 원내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의원들은 "나 찾는 거 아니었어?"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곧바로 기다리던 주인공이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였다. 이때부터 취재진과 박 전 대표 경호원들의 몸싸움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붐비던 의원회관 앞 로비는 텅 비었다.

    박 전 대표가 참석한 '여의포럼' 창립 1주년 행사장. 김 의장과 박 대표, 안 원내대표가 나란히 앉았다. 그러나 방송 카메라와 사진기 플래시는 이들이 아닌 박 전 대표를 향했다. 여의포럼 간사 유기준 의원이 행사 참석자들을 소개할 때는 더 굴욕이었다. 관례상 직책이 높은 순서대로 참석자를 소개하는데 이날 행사에서 유 의원은 참석 순서대로 참석자를 호명했다. 그러다 보니 김 의장은 36명 참석자 중 18번째로 소개를 받았고 박 대표는 그보다 앞선 14번째로 호명됐다.

    사회를 본 유 의원도 멋쩍었는지 김 의장을 다시 소개하며 박수를 유도했지만 박수치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박 대표가 소개를 받을 때도, 안 원내대표가 소개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썰렁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소개 때는 환호성이 터졌고 박수갈채가 쏟아져 참석자 소개가 잠시 중단됐다. 맨 앞줄에 앉아있던 김 의장, 박 대표, 안 원내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박 대표는 눈을 감았고 안 원내대표도 책자만 만졌다.

    인사말을 하려고 맨 먼저 마이크를 잡은 김 의장은 "아무리 박수를 크게 치라고 해도 박근혜 전 대표 소개할 때 처럼 박수가 크지 않다"고 농을 던졌고, 안 원내대표는 "오늘 부산에서 많이 오셨죠"라고 물었다. 김 의장의 인사말은 박 대표에게 더 굴욕이었다. 김 의장이 현 여당의 지휘자인 박 대표를 두고 박 전 대표의 당 운영만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 김 의장은 "박 전 대표의 살신성인으로 (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으로) 40~50석에 밖에 얻지 못할 의석을 120석까지 얻었다. 다시 천막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김 의장의 인사말 내내 고개를 숙였다. 표정은 어두웠고 그의 인사말이 끝나자 바로 박수를 치지도 않았다. 마이크를 넘겨 받은 박 대표는 이런 심경을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그는 "내가 오늘 (행사장에) 들어오다 깜짝놀랐다. '내가 인기가 요즘 좋아졌나'했는데 (취재진은) 내가 지나간 뒤에도 그대로 있더라. '착각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표가 참석했으니 (인사말은) 길게 안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박 대표의 인사말 도중 행사장을 나갔으나 박 대표와 안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와 함께 행사장을 빠져나가며 또 굴욕을 당했다. 나가면서도 취재진이 모두 박 전 대표에게만 몰렸기 때문. 공교롭게도 맞은편 행사장에 있던 이 총재도 이 시간 행사장을 나와 박 전 대표와 마주쳤다. 회관 로비에 박 대표와 이 총재 안 원내대표가 한 자리에 있었던 것인데 취재진은 모두 박 전 대표의 뒤만 따랐고 이들 세 사람은 이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