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을 위한 의원총회장. 2차 결선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고 곧이어 새 원내대표-정책위의장으로 안상수-김성조 후보가 발표되자 이재오계로 알려진 모 의원은 재빨리 전화를 꺼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연결되자 웃으며 뭔가를 말했다. 1~2분 가량 통화 뒤 그는 주변 의원들과 악수를 나눴고 다시 웃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 결과는 여당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게했다. '주이야박'(晝李夜朴), '월박'(越朴)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당의 무게 중심이 박근혜 전 대표 진영으로 쏠렸다는 그간의 정치권 관측이 사실과 달랐다는 것과 '화합'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양 진영 불신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번 선거결과가 주목되는 것은 바로 주류인 친이계의 권력이동 현상이다. 현 여권내 주류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전 의원이 두 축을 이뤄 중심을 잡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 전 부의장에 무게중심이 쏠려있던 게 사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돼 논란 중심에 섰다. 그러나 이 무게중심이 원내대표 선거를 계기로 이 전 의원으로 이동할 것이란 전망이 주류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 전 부의장이 원내대표 경선으로 친이-친박 양 진영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면서다.

    이 전 부의장은 선거 전에는 친이계로 부터 황우여-최경환 후보를 돕고 있다는, 선거 뒤에는 친박계로 부터 약속을 깼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으며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그간 양 진영 완충 역할을 하며 당 안팎의 비판을 버텨왔는데 이번 선거로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이미 경북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 패배로 힘이 빠진 상황에서 이번 논란은 그를 더 위축시킬 것이란 게 당 관계자들 전망이다. 이 경우 자연스레 이 전 의원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거 막판 친이계 결집을 주도한 측은 바로 이재오계와 정두언 의원 등으로 알려졌다. 선거 전날 공성진 정두언 진수희 등 이재오계 의원들이 주류 측 결집에 총력을 쏟았다는 얘기는 선거 당일 당 안팎에 급속히 퍼졌다. 전날 오전까지 승리를 자신하던 친박계가 이날 밤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움직임에서다.

    여기에 '당 쇄신'의 초점은 이 전 부의장 2선 후퇴로 좁혀지고 있다. 개혁 성향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은 '이 전 부의장이 중앙정치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84.8%)는 자체 여론조사까지 발표하며 이 전 부의장 퇴진에 불을 당긴 상태다. 이 작업은 소장파와 이재오계 초선 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설까지 퍼지며 주류 측의 무게 중심은 이 전 의원에게로 이동하는 분위기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친이계 모 재선 의원은 "주류 표심이 결집하면서 낙승하긴 했지만 '중립 선언'을 한 이 전 부의장은 이미 친이계 내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뒤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과 달리 정두언 의원이 이번 세 결집의 중심에 섰고 이 선거를 통해 그가 주류 내 주류로 올라섰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주류의 결집도 그가 주도하고 이재오계가 서포트한 것이란 것인데 당 관계자는 "이재오계 의원들은 자연스레 결집했다. 정 의원 주도로 친이계가 결집한 것으로 안다"면서 "지금 이재오 전 의원이 전면에 나서긴 아직 부담스런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전 부의장이 위축된 건 맞는데 그렇다고 힘이 바로 이 전 의원에게 쏠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