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지금까지는 잘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인 것 같다. 그가 온 뒤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았고 경기 하강 속도가 느려졌다. 현 정부 첫해 경제를 불안에 빠트렸던 환율 정책도 윤 장관 이후엔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사상 최대 규모인 28조원의 경기부양 추경도 무난히 관철시켰다. 실언, 실책도 거의 없었다. 안개가 가득 낀 시계 제로 상황에서 경제팀이 분열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순항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선장인 윤 장관의 친화력과 솔직함 같은 개인의 강점과 리더십을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점에서 윤 장관은 분명 연착륙(軟着陸)에 성공했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센 대한민국의 힘 없는 경제팀장으로서 그 정도면 100일간 잘해왔다.
하지만 평가를 유보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윤 장관은 비교적 나은 여건에서 경제팀장을 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 풍랑이 잦아지기 시작했을 때 그는 키를 잡았다. 전임자인 강만수 전 장관이 나라의 운명이 걸린 최악의 금융·외환위기와 격전을 치렀다면, 윤 장관은 금융시장이 평온을 찾은 상황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경기침체와 장기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가 금세 나오는 단기전은 쉽게 평가할 수 있지만, 장기전은 점수를 매기려면 세월이 한참 흘러야 한다.
취임 후 윤 장관에게 주어진 임무는 경기 살리기, 기업 구조조정, 성장 잠재력 강화 등 세 가지였다. 경기 살리기부터 보자. 윤 장관은 예산을 앞당겨 집행하는 것으로 경기침체를 둔화시켜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랏돈을 풀어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수단에는 한계가 있다. 재정으로 성장률 수치를 높인 것을 놓고 "윤 장관이 잘했다"고 평가하기는 좀 그렇다. 또 윤 장관이 아무리 뛰어도 세계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기 회복은 힘들다.
기업 구조조정도 윤 장관에겐 버거운 일이다. 그동안 조선·건설업계의 작은 한계기업 몇 곳을 퇴출시켰을 뿐 부실을 덮어놓고 있다. 최근엔 대기업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자금난에 빠진 일부 특정그룹의 계열사를 팔게 한다고 해서 구조조정을 잘했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면서 건강한 기업에까지 부실을 전염시키는 2600여개의 '좀비 기업'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좀비 기업들은 현 정부의 잠재적 지지세력이다. 정부가 세금이나 보증 지원으로 먹을 것을 주면 표(票)가 되고, 반대로 칼을 대면 적(敵)이 된다. 그래서 좀비 기업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관리하'에 있지, 윤 장관 뜻대로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성장 잠재력 강화, 이 부분에서 기자는 윤 장관을 평가하고 싶다. 윤 장관이 단순히 위기의 불을 끄는 소방수에 그치지 않고, 경제수장의 역할을 다하려면 '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준비해야 한다. 당장에 표시가 나지않는 일이지만 경제수장이 이 일을 대충 넘기면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해 진다. 현재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규제개혁이다. 윤 장관은 취임하면서 "의료·교육 서비스 규제를 없애 성장기반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 아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안에서 합의를 얻어도 산 넘어 산이다. 국회와 이익집단의 저항이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며칠 전 윤 장관은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겠다"면서도 "누군가는 대를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앞으로 윤 장관이 이 벽에 몸을 던져 금이라도 내느냐, 아니면 벽 앞에서 그냥 주저앉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윤 장관은 이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