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절체절명의 위기인 기후변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세계경제 금융위기를 극복해야만 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한국 속담이 머리에 떠오른다. 오늘날 경제 및 금융 위기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애초에 소가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는 외양간을 설계하라는 것이다. 이는 시장원리, 효과적 규제 및 감독, 그리고 강력한 국제제도에 기초한 세계개방경제 구축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국은 EU와 함께 G20 세계금융정상회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국제 통상협상 강화를 지지하였다.
이 속담의 함의를 생각하면 전대미문의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안이한 것은 아닌지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다. 더 이상 외양간 고치기를 주저하며 기후변화라는 도전과제를 차일피일 미룰 여력이 없는 것이다. 2009년 말 코펜하겐에서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이미 다수의 국가와 지역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머지않아 기후변화의 영향권은 전 지구로 확대될 것이다. 옛 한국인의 지혜는 농업사회였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대 글로벌 세계경제의 맥락에서도 유의미하다.
우리는 2009년 말까지 코펜하겐 기후변화총회에서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 원칙 및 각국의 능력에 따라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post-2012 기후변화 합의를 야심 차게 도출해야 하며,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각국의 능력에 필적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해야 한다. 이에 EU는 각국의 감축량 결정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1)1인당 GDP: 감축비용 지불능력 고려(탄소시장을 통해), (2)저감 잠재력: 일국 경제의 에너지 집중도 시사, (3)조기 행동에 대한 보상, (4)인구: 인구 성장 또는 감소 고려.
이 기준에 따라 각 선진국은 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의 평균 기온 수준 대비 2도 미만이 되도록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30%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EU는 OECD 전 회원국이 이러한 형태의 감축목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의무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채 몇몇 유의미한 녹색기술 개발 및 구축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한국은 세계 9대 CO₂ 배출국으로서 EU 회원국의 감축 목표량과 유사한 수준의 목표치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EU 회원국 중 일부는 한국보다 경제 규모 및 발전 측면에서 뒤떨어져 있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차기 행정부의 경제개발 패러다임으로 정의 내렸다. 현 정부는 녹색성장의 경제적 혜택을 강조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실제 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EU와 한국이 기후친화적 성장을 위한 선진국 및 개도국의 전 지구적 노력을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
한·EU 기후변화 파트너십이 구축된다면 기타 국제 협력국가 및 신흥경제국가들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파트너십이 모범이 되어 합리적인 기간 내에 고무적인 결과가 도출되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시간과 자금, 그리고 국내외의 번영을 잃게 될 것이며, 특히 이러한 영향은 빈곤 개도국들에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살펴볼 때, 한국은 아시아에서 EU와 공동의 가치 및 이해를 공유하고 이를 실행하는 국가이다. 국제적 사안에 대해 한국과 공조함으로써 EU는 기타 국제 사회의 협력국가들에 대해 민주주의, 인권존중, 연대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의 경계를 초월하여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진작하는 공통의 이해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5월22일자 조선일보 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