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20일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발의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개혁 진영의 다른 정당이 동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스스로 물러날 사람은 신 대법관이 아니라 뒤에 앉아서 (소장판사 집단행동을) 부채질하고 있는 박시환 대법관"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중심으로 신 대법관 탄핵을 발의하면, 여당과 자유선진당의 박 대법관에 대한 탄핵발의로 이어질 것이다. 국회의 법관 탄핵은 재적 3분의 1 이상 발의와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진다. 이어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해당 법관은 파면된다.

    국회의 탄핵발의가 실제 이뤄진다면 그건 정치권과 국민 전체의 대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사태는 신영철·박시환 두 대법관의 문제로 그치는 사안이 아니다. 두 사람의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 최고 법원의 기능을 사실상 정지시키는 상황으로까지 몰아넣는 문제다. 재판 독립이란 명분을 내세운 소장판사들의 집단행동은 법원 내부를 찢어놓고 정치권의 탄핵 움직임을 불러들여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독립이 위협받는 사태를 만들고 말았다.

    제대로 된 나라의 제대로 된 법원, 그것도 최고 법원의 판사 2명이 동시에 탄핵 대상이 되는 경우가 어디에 있겠는가. 국민은 법관의 양식(良識)과 그 양식에 입각한 법률해석 능력을 믿고 법관과 판사들에게 재판을 맡긴다. 그런데 판사 가운데 최고의 판사인 대법관들이 그들의 양식과 법 해석능력을 의심받고 탄핵 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마당에 어느 국민이 자신의 이해(利害)가 걸린 일을 법원의 판결에 맡기려 하겠는가. 우리 법원은 국민의 불신(不信)만으로 이미 치욕(恥辱)을 당했고, 이제 나라의 골칫거리가 돼버리고 말았다.

    판사 사이에도 사회를 보는 시각과 이념이 다양할 수 있다. 판사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관점은 상급심을 거치면서 절충되고, 합의를 이루고, 때로는 우세한 의견이 표결로 채택되면서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법원 전체 견해로 종합되고 완성된다. 지금 상황은 최고 법원이 갈등과 분쟁을 최종적으로 종합해 새로운 합의를 창출하는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되레 법원 내 갈등을 바깥 사회로 몇배 더 증폭시켜놓는 일을 하고 있다. 대법관이 동료 대법관을 '협력자'가 아니라 '반대 정파 사람'으로 인식하고, 비공개회의에서 한 말을 밖으로 유출시켜 서로 간에 공격하게 되면 대법관 회의 자체가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살펴보면 탄핵 사유는 신 대법관 경우보다 박 대법관 경우가 더 심각하다. 박 대법관은 절차적 정당성과 실체적 정당성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법의 수호자(守護者)' 역할을 해야 할 신분의 대법관으로서 "절차와 규정은 안 지킬 수도 있다. 4·19와 6월항쟁도 절차와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4·19는 이승만 정권이 3·15 부정선거를 통해 국민의 참정권을 유린한 데 대해 들고일어난 국민 저항권의 표현이었다.

    6·29 역시 군부 쿠데타 세력이 자신들의 집권을 영구화(永久化)하기 위해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길을 봉쇄한 데 대한 국민의 항거였다. 박 대법관은 현재 상황이 어떤 면에서 4·19 또는 6월항쟁과 같은지를 설명하고, 박 대법관이 오늘의 상황을 그렇게 판단한다면 우리 법원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박 대법관은 근거 없는 정치 선동으로 대한민국 헌정(憲政) 질서 전복을 시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박 대법관은 '우리법 연구회'라는 법원 내 이념조직 비슷한 모임을 만든 사람이다. 그 모임은 회원이 누구이고 몇명인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 모임 회원들이 소장판사 집단행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독재정권 시절 군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비슷하게 행동한 것이다. 판사라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입장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면서 어떻게 사회 갈등을 중재하는 법관의 임무를 다하겠는가.

    대법원장은 국민의 불신과 정치권의 탄핵 움직임과 법원 자체의 내부 분열이란 삼중고(三重苦)에 허덕이며 나라의 골칫거리로 전락해버린 우리 법원을 어떻게 다시 정상으로 되돌릴 것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수습에 자신의 진퇴(進退)를 걸 각오로 해야 한다. 대법원장과 대법원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의식 아래 문제의 본질을 직시(直視)하면서 근본적인 수습에 나서지 못하면 대한민국 법원이 스스로 붕괴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태에 이를 것이다. 이번 사태의 두 당사자 역시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재판의 독립과 법관 인사의 독립이라는 자신들의 입으로 표방한 대의(大義)에 입각해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5월21일자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