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가을, 퇴임을 앞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불러 청와대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후임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김 대통령은 5년 재임기간에 얽힌 소회를 털어놓은 끝에 엉뚱하게 “김 주필(당시 내 직책이었다)은 자녀가 몇이오?”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결혼을 했느냐?” “성가(成家)한 자녀들이 아버지 말은 잘 듣느냐?”고도 물었다.

    그것은 내 가족에 관한 것을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장성(長成)하면 아버지의 뜻을 따라주지 않더라”고 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권력형 부조리에 연루돼 영어(囹圄)의 몸이 돼있던 당신의 아들을 몹시 애통해하고 애석해했다. 김 대통령의 심정을 헤아리건대 취임 초 아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며 외국에 내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쓴 내 칼럼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YS가 취임하기 4일 전인 1993년 2월 21일자 조선일보에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대통령의 아들은 그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권력의 부나비가 돼 거기에 빨려들어가 타버리는 것이라며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국민과의 ‘큰 의리(義理)’를 지키려 한다면 가족을 정치에서 멀리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이 칼럼이 초판(저녁 7시쯤)에 보도되자 YS 측은 아들을 청와대에 데리고 들어가 살기로 한 애당초의 결정을 뒤집으며 ‘오보’임을 내세워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아들’은 ‘가족’이 되고 ‘부나비’도 빠지는 등 수난(?)을 겪은 채로 배달됐다. 주위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믿고 아꼈던 아들로 인해 자신의 대통령시대에 오점을 남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그의 어조에 배어 있었다.

    대통령의 친인척은 언제나 예외 없이 기승했다. 그렇게 엄격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비록 권력형 부조리는 아니라고 해도 자녀들의 ‘다른 문제’로 많이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자녀들이 결혼 전이거나 학업 중이어서 권력적으로 ‘어긋난 일’은 없었던 대신 형, 동생, 처남들로 인해 권력은 쉴 사이 없이 누수 현상을 빚었다. 본인들이 ‘대통령 형(兄)’을 업고 출세를 하려고 한 경우도 있고 주변에서 그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

    김영삼·김대중 시대에 들어와서는 ‘대통령의 아들’들이 문제였다. 이들의 힘은 다른 친인척보다 더 막강했고 개입과 비리의 규모도 더 컸다. 어떤 경우는 대통령에게 가는 중요한 정보를 사전에 차단했고 때로는 ‘황태자’처럼 군림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정치적 탄압을 받을 때 같이 불이익을 당하며 고통을 함께한 가족으로서의 ‘보상’을 받는다는 나름대로의 자기합리화가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달랐다. 지난 시절 대통령 가족의 문제가 그나마 독립한 친·인척의 권력형 비리였다면, 노무현 가족의 경우는 부모가 물어다준 (또는 먹여준) 것들이다. 과거에는 대통령 자신은 개입하지 않았거나 몰랐던 것들인 데 반해 노무현씨의 문제는 대통령 또는 부인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과거의 비리가 대개 청와대 밖에서 이뤄진 것인 데 반해 노무현식 비리는 청와대 내(內)이거나 언저리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도 ‘친·인척의 덫’에 걸려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그의 문제는 부인이나 자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그것도 중진 정치인인 형(兄)에게 있다. 한나라당 이상득(李相得) 의원이다. 지난번 총선 때 국회 물갈이를 위해 친이·친박계는 막후에서 ‘65세 이상 공천 안하기’에 합의했다.

    물론 이 대통령의 동의도 얻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73세 이상득 의원에 의해 여지없이 깨졌고 양 계파 간의 화해 모드는 이때부터 완전히 금이 갔다. 이 의원은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여당 내 어느 의원에게 물어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가 그만큼 세다는 것이고 동생인 이 대통령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노무현씨가 장인의 사상 문제가 거론됐을 때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고 대꾸했듯이 이 대통령도 “그럼 나보고 형을 버리란 말이냐”고 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재계에서도 대통령의 형은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통한다.

    이 의원은 이런 현상에 화를 내며 억울해한다. 정치를 해도 자기가 먼저 했고 당과 국회 내의 위치도 자기 스스로 얻은 것인 만큼 왜 동생 때문에 자기가 손해를 봐야 하는 것이냐고 역정을 냈다고 들린다. 맞는 얘기다. 이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자기 아이덴티티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씨 가문에 관한 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손해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정치라는 점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형 때문에 손해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이 의원이 손해볼 수밖에 없다.

    이 의원이 스스로 파워가 있는 위치에 있는 만큼 ‘파리’들은 그것을 빙자하거니 위장해 그에게 접근할 것이고 이미 동생 없이도 상당기간 그런 권력형 접근에 익숙해 있는 ‘정치 선배’로서 그 모든 것이 ‘자기 것’인양 착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동생을 해치는 일이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이제 이 의원은 물러나는 것이 도리다. 그러면 그는 박수 받을 것이다. 가문에 대통령을 배출하고 자신은 박수 받으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 이 의원이 동생인 이 대통령을 이기는 길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