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성규도 북한을 탈출하고 중국을 사년간 떠돌다 중국마저 탈출해 베트남에 들어와서 미국 대사관에 몸을 의탁했다가 한국으로 오게 된 케이스였다. 성규가 미국 대사관에 진입한 것은 처음부터 미국 대사관에 진입하자 마음먹고 그리 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성규는 한국대사관에 진입할 작정이었고, 한국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었다. 한국으로 가자는 유일한 일념으로 나선 장장 일만여 킬로 미터에 이르는 대탈주였으므로, 당연한 작정이었었다. 헌데, 성규가 작정한 한국대사관을 버리고 미국대사관으로 진입하게 된 것은 그의 의사가 아니었다. 한국 대사의 의사였다. 한국 대사가 그처럼 움직이도록 부추겼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성규는 처음 하노이에 있는 한국 대사관, 아니 정확히는 한국영사관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한국 영사관은 성규를 맞아주지 않았다. 한국 영사는 성규를 만나주지 않았다. 당시 한국 영사관은 오층의 현대식 건물에 삼층인가를 임대해 들어가 있었는데, 성규는 그 건물의 수위로부터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저 사람이 한국 영사라는 정보를 들어야 했었다. 만나주지 않는 한국 영사를 건물 수위의 귀띔에 의존해 확인하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영사를 붙들고 도와달라는 청을 해야 했다. 성규의 청에 대한 한국 영사의 반응은 대단히 시큰둥하고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어디 갔다 일년 후에 오면 그때 받아주겠다는 게 한국 영사의 답변이었었다.

    한국 대사에게 성규는 귀찮은 존재였었던 것 같았다. 아니라면, 대단히 한가한, 할 일 없는 놈팽이쯤으로 비쳤던 것 같았다. 한국 영사에게는 성규의 상황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몹시 급박한 상황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인지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인지되었다면 갔다가 일년 후에나 다시 오라는 그런 무책임하고 여유로운 말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성규는 목숨이 경각이었고 바로 내일을 아니 바로 한시간 후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갔다 일년 후에나 오라는 말은 성규 보고 개처럼 죽으라는 말이나 진배없는 것이었다.

    한국대사의 거부로 한국 대사관에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규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미국 대사관을 찾았던 것이다. 정말이지 죽을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시도도 못해 본 채 죽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적어도 미국 대사관은, 미국 대사는 성규를 문전박대하지 않았다. 성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성규를 맞아주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성규는 그때 한국대사관으로 갔었던 것보다 미국 대사관으로 갔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미국 대사는 성규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를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이었다면 성규는 한국 대사관의 무책임한 처사에 대해 뭐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성규 자신이야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한국 대사관이 이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한국 대사관은 당연히 이런 절박한 경험이 없었을 테고, 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했던 것은 외려 자연스런 일이었다고 할 만한 일이었다.

    성규가 그때 기억만 떠오르면 한국 대사관에 분노가 치미는 건 사건이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탓이었다.

    그때 성규는 혼자가 아니었다. 민주와 함께였다. 성규와 민주는 결혼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결혼할 사이였다. 성규는 중국을 떠돌다 그처럼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을 떠도는 민주를 만났고, 만난 지 사흘만에 사랑에 빠졌고, 대한민국에 들어가게 되면 결혼하자 하는 언약을 맺었다. 성규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중국을 빠져나와 베트남으로 들어와 대한민국으로 가고자 했던 게 민주 때문이었고, 민주가 또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건 성규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그 민주가, 성규의 전부였고 삶의 이유였던 그 민주가 죽었던 것이다. 한국 대사에게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살 길을 찾아 다시 발길을 돌려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던 도중에, 민주가 죽었던 것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 조폭에게 끌려갔던 것이다. 중국 조폭에게 끌려갔다면 살아있을 가망성은 없었다. 살아있을 가망성이 있다 하더라도, 폐인이 되지 않고는 못배겼을 터였다. 그때 그렇게 민주를 잃지만 않았다면.

    민주와 함께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에 들어왔을 때, 그곳은 열대우림의 울창한 밀림이었다. 성규와 민주는 길을 못 찾은 채 서너시간을 그 울창한 밀림 속을 헤매어야만 했다. 그러다 마주치게 된 게 베트남 국경수비대였다. 성규와 민주가 길 잃은 한국인이라고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주장해댔지만, 베트남 국경수비대는 성규와 민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성규와 민주가 불법 월경자임을 금세 눈치챘고, 성규와 민주를 찦차에 태워 중국 국경이 있는 곳까지 가 그들을 다시 중국으로 넘겨버렸다.

    다시 중국으로 넘겨진 성규와 민주는 막막했다. 중국 공안의 눈에 띄어 잡히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중국 공안은 성규와 민주가 탈북자라는 걸 단박에 밝혀낼 거고, 탈북자라는 게 드러나는 그 순간 성규와 민주의 생명은 더는 보장받을 수 없게 될 터였다. 중국 공안은 몇가지 절차를 밟을 테고, 일사천리로 그 절차가 끝나면 곧바로 성규와 민주는 북한으로 압송되어질 것이었다. 북한으로 압송되면 성규와 민주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뻔한 것이었다. 죽임을 당하거나, 감금되거나, 수용소에 수용될 것이었다. 공화국을 배반한 배신자, 반역자로서. 어느 경우에나 성규나 민주에게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화국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게 공화국 대문 앞에 붙어있는 현판의 내용이었으니까.

    성규와 민주는 어떻게든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살 길은 그 길 밖에 없었다. 성규와 민주는 살고 싶었고,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건 당위였다. 남들처럼, 진짜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고, 가정을 꾸려 인간처럼 살고 싶었다. 이건 큰 욕심이 아니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자연스러운 욕심이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욕심마저 충족되지 않고 배반당한다면 성규와 민주는 세상이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었다.

    북한은 이런 기초적인 욕심을 배반하는 부당한 나라였다. 그래서 성규는, 민주는, 북한을 탈출해나온 것이었다. 세상에 부당한 나라는 북한 한 곳이면 족했다. 그마저도 충분히 많은 것이었다. 북한에서 나고 자란 성규와 민주에게는, 그와 같았다. 북한 이외의 곳에서는 부당함이 없어야 했다. 북한 이외의 곳에서마저 그렇다면, 그건 삶의 의지를 꺾는 일이었고,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때 나타난 것이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밀무역을 하는 중국 조폭이었다. 중국 조폭이 무엇 때문에 절박한 지경에 이르른 성규와 민주에게 관심을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들 나름대로 성규와 민주가 돈이 되겠다 싶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중국 조폭들이 베트남 국경 주위를 얼쩡거리고 있는 성규와 민주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성규는 천운이다 싶은 생각에 서슴없이 대답했다. 자신과 민주는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인데, 잠시 볼 일이 있어 중국에 나왔다 여권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중이다 드러니 자신들을 베트남 한국 대사관까지 데려다만 준다면 사례는 톡톡히 하겠노라고 했다. 중국 조폭들이 성규의 말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대체로는 믿지 않았을 거였다.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그렇고, 국경 근처를 서성이는 것도 그렇고 모두가 황당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중국 조폭들은 성규의 제안을 흔쾌히 접수했다. 성규와 민주를 베트남 하노이의 한국 영사관까지 데려다주겠노라고 했다. 성규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렇게 함으로써 돈을 챙길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계산이 섰던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성규가 하노이에 있는 한국 영사관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중국 조폭의 도움 덕분이었던 것이다. 도움을 받았으면 사례를 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짐승이라면 모를까 인간인 이상 그건 인간된 도리였다. 성규는 한국 영사관에만 가면 중국 조폭에게 사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단지 생각이 아니고 거의 믿음이었다. 그가 한국 대사관에 진입하면 한국대사관은 그를 반갑게 환영하고, 그를 도와준 중국 조폭에게는 충분한 사례를 해주리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믿음과 신뢰를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무국적자로 떠돌던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믿음을 성규는 지니게 되었었고, 그건 민주도 마찬가지였었다. 성규와 민주가 지금 이렇게 기를 쓰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려 하는 게 그 믿음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믿음이 너무 강했던 때문인가. 그래서 주위에 전염이 되어버린 탓인지 모르겠다. 중국 조폭도 당연히 그렇게 믿었다는 것이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중국 조폭이 근본도 모르겠는 한심한 성규와 민주를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나섰을 리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산산이 깨어졌다. 한국 영사로부터 어디 가서 놀다 내년에 다시 오라는 문전박대를 당하는 순간, 민주의 믿음도 무너졌고, 중국 조폭들의 믿음도 깨어졌다. 누구의 믿음이 깨어지는 강도가 가장 컸을지는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 지금 이 순간 성규와 민주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북한의 보위부원도 아니고 중국의 공안도 아니고, 중국 조폭들이라는 것이었다. 믿음에 배반당한 것을 중국 조폭들은 참지 못할 것이었다. 성규와 민주는 배반당한 믿음에 참을 수 밖에 없지만, 중국 조폭들은 결코 참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배반당한 믿음에 결단코 복수를 하지 않고는 못베기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중국 조폭들은 말 그대로 조폭들이었으니까.

    성규와 민주는 도망쳐야 했다. 중국 조폭들로부터. 김정일에게서부터 도망쳐야 했던 성규와 민주는 베트남의 한국 영사관 앞에서는 중국 조폭들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일년 후에 다시 오라는 한국 영사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서. 중국 조폭들에게 잡히고서는 일년 후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었으니까. 도망쳐라, 도망쳐라, 도망쳐라. 성규는 누군가 자신의 귀에 대고 이렇게 외쳐대는 것만 같았다. 성규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에 이끌려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성규가 정신을 차렸을 때 민주는 곁에 없었다. 아주 먼 발치에서 중국 조폭들, 저들끼리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도족 것들 정말이지 더러운 것들이야. 지 동포가 살려달라고 찾아왔는데 모른 척 하다니. 이거 한 몫 챙길 줄 알았다가 완전 헛수고했잖아."

    "반도족 것들한테 기대를 한 우리가 잘못이지. 하지만 헛수고한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걸 건졌잖아. 얼굴도 반반한 게 꽤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아. 값도 꽤 나갈 것 같고 말이야.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