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은 이명박 계든 박근혜 계든 당내에서만 힘겨루기를 하면 그게 정치의 전부인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양쪽의 행태를 보는 민심은 이미 한나라당이 너무나 한심한 당임을 꿰뚫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 나간다면 한나라당은 "친이건 친박이건 다 너절하다"는 민심의 최종 확정판결을 받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 박근혜 씨를 초치해 "선거 기간에 있었던 앙금을 강물에 허심탄회하게 흘려버립시다. 내 쪽의 잘못을 지적해주십시오. 진정으로 유감을 표하겠읍니다. 귀측에 대해선 이런 섭섭함이 있었는데, 잘 해명해 주시면 접수하겠습니다." 하고 진정성 있는 화해를 청했더라면? 그리고 박근혜 씨가 그 말을 받아 "서로 유감을 표하고 내가 협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면 나라를 위해 힘껏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화답했더라면?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앞장 서는 '이명박-박근혜 투톱 체제'를 묶고, 그것으로 다시 자유선진당, 우파 민간세력, 물갈이 한 공무원 집단 등을 연결해 광범위한 非좌파 '국정주도 공동전선' 이나 '위기대응을 위한 범우파 정책연합'을 구축할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아마도 지금 같은 집권측의 지리멸렬과 취약성과 권위실추는 없거나 덜했을 것이다. 이 일치된 국민전선의 당당한 힘과 기세 앞에서, 그 나름대로 지리멸렬한 좌파가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박근혜, 너 없이도…." 그리고 박근혜 씨의 "이명박 너 어디 그래 봐라" 하는 식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그리고 자유선진당은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하면서도 사안별로는 야당에 가세하고 있다.

    이래서 범좌파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전기톱과 가투(街鬪)와 화염병이면 이명박 정부와 '보수'를 충분히 마비시킬 수 있다는 심증 을 가지고서 지난 1년 동안 현장 실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그 실험의 효력은 100% 입증되었다. 저런 시원찮은 집권측이라면 초장부터 "이명박 아웃!"으로 치고 나가는 게 당연히 백발백중 적중하고도 남을 노릇이었다.

    이런 추세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씨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다는 쪽으로 가닥이 나고 있다. 그들의 심중에는 김정일, 남한 깽판 세력, 민주당이 교전상대방인 게 아니라, 당내 다른 계파가 불구대천의 주적으로 깊이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길로 계속 나가다가 모두 한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을 누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죽겠다고 내닫는 사람을 죽지 말라고 만류할 성의와 흥미도 이제는 점차 줄어드는 것 같은 세태다.

    야당이 내부의 급진주의 흐름을 청산하고 누구나 안도할 만한 보편성 있는 '중도적 자유주의와 중도적 진보주의'의 JSA(공동 경비구역) 쪽으로 과감히 이동한다면,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식 '실패한 햇볕'을 교정해서 합리적으로 나온다면, 그리고 그런대로 참신한 대표 얼굴을 잘만 골라 세운다면, 한나라당은 하루아침에 나가떨어질 수 있다.

    나는 범야에도 동조하지 않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거두는 과정에 있다. 그들이 잘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지만, 이제 그 기대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기에-. 그렇다고 범야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들이 과감한 노선 전환을 할 가능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우울한 기분이다. 우리에겐 근래엔 지도자 복이 되게 없는 것 같다.

    결국 한나라당이 더 죽을 쑤어서 공멸 직전에 이르렀을 때 그 어떤 극적인 반전극이 연출되되는 요행수를 기다려 봐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 정치는 늘 파국에 이르러서야 불과 5분 전에도 상상치 못했던 급변이 돌발 하곤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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