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이 지난 주말 공중파 방송을 통해 일제히 방영되었다. 이번만큼은 그런 불행한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대다수 국민들이 간절히 소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느 전직 대통령들과 똑같이 “죄송합니다...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는 똑같은 레토릭을 반복해야만 했다.

    ‘불법과 반칙이 판을 치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집권한 그가 어찌하여 불법과 반칙의 상징적 인물로 스스로 자리매김해버린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에 친형 노건평씨가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의 불법자금을 받았을 때에 그는 “많이 배우신 분이 시골 촌부한테 머리 조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일방적으로 감쌌다. 또한, 이회창씨와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몰아세우면서도 자신과 측근에 대해서는 “1/10 수준에 불과하다”고 강변했다. 결국, 이광재, 서갑원 등 그의 측근들이 뒤늦게 법망에 걸려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파괴한 것들을‘리스트’로 정리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부끄러운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말살하려 들었다. 누구는 친일파고, 누구는 반민족 인사고, 누구는 반민주 인사라며 속성으로 낙인을 찍기 바빴다. 그러는 가운데 진짜 자랑스러운 ‘서해교전 용사들’에 대해서는 그 흔적마저 지워버리려 했다.

    “이 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와“그 놈의 헌법 때문에”로 헌법과 법률에 대한 경시 풍조를 조장함으로써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5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민주당을 분당시키고, 신당을 다시 만들고, 탄핵정국을 유발하고, 방송선동을 통해 선거에 개입하고, 집권 말기에는 또다시 합당하고, 이름을 바꾸고...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사실상 정당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붕괴시켰다.

    느닷없이 ‘동북아균형자론’을 들고 나오더니 이어서‘작전통제권 회수’와 ‘한미동맹 조정’을 밀어붙임으로써 국가안보를 위기에 빠트린 것도 대단히 뼈아픈 일이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이 파괴한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 민족적˙국가적 자긍심, 법치주의, 정당제도, 국가안보 등 그야말로 국가가 존립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가치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도리어 이처럼 엄청난 파괴와 훼손이 지난 5년 동안 감행되었음에도 아직 국가의 틀이 유지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이 역사의 족적으로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국가시스템과 헌정질서를 만들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0.26으로 인해 초래된 권력 공백기에 국가안보와 경제를 업그레이드시켰고, 스스로 공언한 단임 약속을 지킴으로써 87년 직선제 개헌의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바로 이들이야말로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부끄러워했던 우리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이다. 과연 이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항변할 수 있을까? 아니,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과 후세에게 무엇으로 이름을 남기고 기록될 것인가?

    과거 전임 대통령들은 부인과 자식의 허물까지도 모두 자신이 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수많은 업적을 남긴 상황에서 억울한 측면도 있고, 허탈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결코 변명하거나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노 전 대통령은 부인과 자식의 뒤에 숨은 채로 계속해서 한때 그가 지배했던 세상을 향해 저주와 넋두리를 쏟아내고 있다.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고, 파괴와 훼손의 역사를 수없이 써내려간 것에 대해 참회하고 자성할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더 이상 역사의 무대에 올라와 국민들에게 짜증과 불쾌감을 주는 일이라도 이쯤에서 멈췄으면 한다. 그것이 한때 대통령으로서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