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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은 지난 1975년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공산 월맹(북베트남)에 항복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진 이른바 '월남 패망'의 날로 부터 꼭 34년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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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4월30일 사이공을 함락시킨 월맹군인들이 월남 대통령궁에서 월맹 깃발을 흔들고 있다.
베트남의 남쪽 '자유 월남'은 미국과 월맹이 주도한 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이뤄진 휴전이 1975년 3월 10일 월맹의 침공으로 깨진 지 50일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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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 패망후 월남을 탈출하려는 국민들이 배를 타려고 길게 줄을 서 있다.
월남은 지도급 인사들 사이에 만연했던 부정부패, '민주 인사'들의 끊임없는 반정부 데모 등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월남군은 한때 125만명의 지상군, 세계 4위에 이르는 공군력을 가졌었지만 군 내부 부패와 사기 저하로 지리멸렬하는 바람에 하루 2끼를 주먹밥으로 때우고 슬리퍼를 신은 월맹군대를 맞아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패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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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4월30일 사이공 함락 직후 월남을 탈출하려고 미국대사관 담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월남국민들.
휴전 모드에 젖어 월맹은 절대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월맹군의 침공을 환영하기까지 했던 많은 월남 국민에게 패망의 대가는 혹독하고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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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지원한 최신 무기도 부정부패로 사기가 떨어진 월남군에는 소용이 없었다. 월남 탈출 직전 적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으려면 아무 이상없는 헬리콥터도 바다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회복 국민협의회(국정협)는 30일 주요 일간지에 실은 광고에서 "34년전 월남 패망 이후 26만명이 학살되고, 11만명이 바다에 빠져죽었으며 350만명이 월맹 치하의 수용소에서 죽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공산통일을 당성한 월맹은 "한번 반역하면 또 반역한다"며 민주를 외치며 밤낮으로 데모하던 교수 학생 종교인 등 '민주 인사'들을 처형했다는 것. 이들에 따르면 월남 국민들 중 바다로 탈출하려던 해상 난민(보트 피플) 116만명 중 11만명이 바다에 빠져죽었고 수용소에 갇혔던 350만명이 10년동안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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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맹군이 사이공으로 쳐들어오던 시간, 월남 지도층 인사들은 가족과 함께 미국 비행기로 탈출하기에 바빴다.
"인민은 굶어죽어도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북한과 대치하고 "북한 로켓 발사를 민족의 일원으로 경축한다"고 말하는 유명 인사가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다니는 한국 상황에서 34년전 월남 패망의 교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