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쪽 기관지 <민주조선>이, 고발당한 신해철을 적극 두둔하면서 “동족으로서…” 운운했다고 한다. 나는 신해철에 대해 이러고 저러고 언급할 흥미는 전혀 없다. 그러나 북쪽이나 친북하는 자들이 걸핏 하면 ‘같은 민족’을 들먹이는 것만은 정말 역겹다.

    같은 민족끼리라도 원수가 될 수 있고, 이민족끼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김일성이 탱크를 몰고 동족인 우리 자유민주진영을 죽이러 내려왔을 때 그는 우리의 원수일 수밖에 없었다, 동족을 죽이는 자가 단순히 동족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동족의 친구로 불릴 수 있는가? 그런 동족은 없는 것이 백 번 낫다.

    그런데 우리가 몽땅 죽임을 당할 순간에 어느 이민족이 뛰어 와 우리를 구해 주었다면 그들은 우리의 친구임에 틀림없다. 우리를 죽이는 동족이 우리에게 더 좋은가, 우리를 살려주는 이민족이 우리에게 더 좋은가?
    같은 민족끼리 김정일은 왜 비무장 금강산 관광객을 쏴 죽였는가? 같은 민족끼리 김정일은 왜 KAL기에 탄 우리 근로자들을 무자비하게 폭사시켰는가? 같은 민족끼리 김정일은 왜 북한의 지하교인들을 잡아 죽이는가? 그렇다면 김정일과 그의 남쪽 추종자들에게는 자기들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방은 같은 민족이라도 무자비하게 제거 하겠다, 이 말인가?

    그러고 보면 저들에게 있어 똑같은 한민족이라도 친(親)김정일 분자만이 동족이고, 김정일을 비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죽여도 좋은  비(非)동족인 모양이다. 참 제멋대로 갖다 써먹는 편리한 ‘동족’ 운운이다.

    언제부터인가 민족이 체제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신대륙에 이주한 앵글로 색슨족은 왜 영국 본토의 앵글로 색슨족에 반대해 피어린 독립전쟁을 했는가? 바로, 민족보다 가치관, 생활양식, 체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 프랑스는 왜 이민족인 미국인의 독립전쟁의 원군으로 참전했는가? 바로, 민족보다 가치관, 생활양식, 체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독립을 열망한 미국인들에게 영국본토의 동족과 프랑스 이민족 중 과연 누가 적이고 친구였는가?

    마찬가지로, 2차대전 때 ‘같은 민족’이라는 구실로 히틀러의 제3 제국'에 병합당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도, 같은 게르만 민족인 나치스와, 이민족인 연합군 중 과연 어느 쪽이 적이고 친구였는가? 스페인 내란 때도, 좌파 인민전선은 프랑코 군부에 맞서 싸웠을 때 수많은 이민족 의용군의 지원을 받았다. 김정일과 그 추종분자들의 논리대로라면 그렇다면 당시의 스페인 인민전선은 이민족 외세를 불러들인 ‘사대 매국노’였다고 해야 할 것인가? 프랑코도 당시에 히틀러의 지원을 받았다. 이처럼 같은 민족끼리도 원수가 될 수 있고, 이민족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치관과 생활양식과 체제에 대한 견해 여하에 따라서 말이다.

    원래 좌파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부르짖고 우파가 복고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세계사의 교과서에 맞는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김정일과 남한 좌파가 오히려 '민족'을 상품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럴수록 그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그 만큼 한반도의 극좌가 시대착오적이었고, 대한민국 건국원로들의 글로벌 지향이 선진적이었다는 반증이다. 김정일과 종북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민족’ 운운은 그래서 민족을 파멸시킬 한 개 저급한 유사종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