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드볼 시대(1901~1919년)를 대표하는 타자라 하면 물론 타이 콥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을 절반으로 나누어 본다면 1900년대는 호너스 와그너,1910년대는 타이 콥이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대부분 타이 콥을 와그너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물론 더 좋은 성적, 기록이 뒷받침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당시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규칙이 리그마다 다르게 적용되었고 또한 현재와 규칙이 달랐다는 것이 일부 작용했다 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투스트라이크 이전의 파울볼을 스트라이크로 인정한 것이 내셔널리그는 1901년,아메리칸 리그는 1903년으로 다르게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타율 자체를 30포인트 이상 차이나게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단순 타율로만 생각한다면 그의 통산 타율(.327)은 더 떨어진다고 보는 편이 맞다.

     하지만 빌 제임스가 역사상 최고의 메이저리그 선수 2위로 꼽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 이유는 야구에서의 다재다능한 면과 철저한 자기 관리,성격 등이 작용한다 볼 수 있다. dhk그너는 스카우터가 와그너의 형을 스카웃할려고 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팀에 들어오게 된 케이스인데 그는 포수를 제외하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또한 수준급의 유격수 수비까지 보여줘서 팀에서의 가치 또한 상당히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도루도 능한 데다 장타 능력까지 갖춘 선수이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의 타자이기도 했다.(1900년대 최다 도루: 488, 최고 타율: .352, 장타율 1위: 6회,도루왕 5회,1900년대 최고의 호타준족 플레이어)

    성격도 겸손하고 솔직한 면이 있어 팬들에게 인기도 많았으며 아메리칸 리그 워싱턴 구단 측에서 기존보다 높은 급료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고 리그 경기 이외의 순회 경기에서도 따로 돈을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크게 바라지 않는 선수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와그너를 가장 흔히 접하게 되는 것은 '와그너 야구 카드'일 것이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162만 달러라는 고가에 팔렸던 이 카드는 지금은 100장도 채 남아있지 않아 야구 기념품 중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금연주의자였던 와그너가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카드가 담배의 홍보 수단으로 나가는 것에 항의했고 이후 전량이 수거되어 지금 이렇게 가치가 높아진 것인데 와그너는 금연주의자이기도 했지만 프로는 몸이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했던 선수다. (금연,금주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잠도 하루에 10시간은 규칙적으로 자는 것을 생활화했다고 전해진다.)

    43세까지 야구를 하며 야구 선수가 갖춰야할 모든 것을 몸소 보여줬던 와그너,그는 진정 야구를 즐길 줄 하는 선수였음이 분명하다.

    통산 기록(1897-1917,명예의 전당:1936)

    타율 .327,홈런 101,타점 1,732 ,안타 3,415,도루 722 영구 결번:33
    기타 설명

    1.피츠버그의 전성기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본다면 호너스 와그너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쉽게 나눌 수 있다.

    1900년대 최고의 팀이었던 피츠버그는 당시 938승 538패(승률 .636)로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했던 팀이었고 1902년은 팀 역사상 최고 승률(.741),1909년은 팀이 16연승을 하는 동시에 110승으로 팀 역사상 최다승을 거둔 해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와그너가 있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2.어머니가 어릴때 애칭으로 '한스(Hans)'라고 붙여줬는데 이것이 나중에 호너스로 바뀌어 불리게 된다.그의 별명 '플라잉 더치맨'은 독일계 이민자 출신에다 빠른 스피드라는 이유로 붙여졌다.

    3.타이 콥과 와그너의 단순 비교

    타이 콥:타격왕 12회(역대 1위),타점왕 4회,도루왕 6회,장타율 1위:8회(역대 3위)

    호너스 와그너:타격왕 8회(역대 2위,토니 그윈과 동률),타점왕 5회(역대 2위,루 게릭과 동률),도루왕 5회,장타율 1위 6회(역대 7위)

    *타격왕은 타율1위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