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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한 뒤 오찬을 함께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 양국은 혈맹의 관계"라며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이 대북 문제 등 안보현안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클린턴 장관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 의지는 굳건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2만5000명의 주한미군은 그 의지의 증거"라며 "한미 동맹은 흔들리지 않을 것(unshakable)"이라고 화답했다.
배석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대통령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 "핵을 보유하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북한에 계속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은 또 "미국이 세계경제의 회복과 금융질서 개혁에 리더십을 발휘해주길 바란다"며 "특히 세계 모든 나라가 동시에 재정지출을 해야 세계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이번 런던 G20 금융정상회의에서 각국이 최소한 GDP의 2% 정도는 투자해야 회복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MB "경제회복에 미국이 리더십 발휘해주길…각국 보호무역주의 유혹 뿌리쳐야"
클린턴 "이 대통령 충고, 오바마 대통령 및 경제 참모에 전하겠다"이 대통령의 "각국이 보호무역주의에 빠지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는 지적에 클린턴 장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적 조치가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의 지혜로운 충고를 오바마 대통령 및 경제참모들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클린턴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G20에서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며 안부를 전했다.
기후변화 대처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우리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적 공통관심사인 만큼 올해 유례없는 연구개발 예산을 책정해 민관이 협력해 대처해 나가려 한다"고 설명했다. 클린턴 장관은 "한국의 저탄소녹색성장 정책에 대해 설명 들었다"며 "기술협력과 다른 다양한 방식을 통해 효율적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협력해 나가겠다. 이번에 기후변화 특사와 동행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관심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클린턴 장관이 방한 후 중국 방문 예정인 점을 감안, "중국이 세계경제 위기 극복에 동참하고 기후변화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과 중국은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대처 등 여러 현안에서도 발전적 협력관계를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고, 클린턴 장관은 "중국을 방문해 중국이 앞으로도 제로섬(zero-sum)이 아닌 윈윈(win-win)의 자세로 세계 속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30여분 간의 접견에 이어 1시간 가량 진행된 오찬에서 이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은 시종 화기애애하면서도 양국 현안에 대해서는 속깊은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인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바 있는 클린턴 장관은 이날 붉은 색 정장 차림으로 청와대에 들어섰다.
이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은 서로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나눈 뒤 취재진의 요청에 함께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는 등 가볍게 환담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먼저 "불과 50년전 1인당 소득 40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이 오늘날 이만큼 성장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한 결과"라며 "한국의 성공은 미국 외교사의 성공사례이며 미국으로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한국이 이룬 업적은 찾아보기 힘든(extraordinary) 성공스토리"라면서 "많은 사람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클린턴 장관과 동행한 힐 차관보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등에게도 농담을 던지며 부드러운 환담을 유도했다. 이 대통령이 힐 차관보가 주이라크 대사로 내정된 것을 언급하며 "남북관계를 벗어나게 돼서 시원섭섭하겠다"고 말하자 힐 차관보는 "한국의 사촌인 북한과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미국 정부를 대표해서 일하게 된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이 최근 행사에서 스티븐스 대사를 향해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친근감을 표했던 사실을 떠올린 듯 클린턴 장관은 "이번에 와보니 스티븐스 대사가 미국의 대사이자 한국의 대사임을 알았다. '듀얼 햇'(dual hat.이중 감투)"이라고 농담했다.
MB "김치는 과학" 설명에 클린턴 "김치는 '매직 푸드(magic food)'"
상춘재서 1시간 오찬…클린턴 "풍요로운 대화 나눠"한우 갈비를 메인 요리로, 고구마편, 게살 밀쌈말이, 잣죽, 삼색전, 야채잡채, 오미자편, 곶감 등을 곁들인 오찬장에서는 김치와 한옥을 대화 주제로 양국간의 거리를 더욱 좁혀갔다. 오찬장인 상춘재에 들어선 클린턴 장관은 내부를 둘러보며 "정말 아름답다. 나무를 깎아낸 기술이 놀랍다"고 감탄사를 연발했으며 이 대통령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거의 200년된 소나무로 만든 친환경 전통 가옥"이라고 설명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대사 관저도 한옥"이라며 "전세계 미국의 재외공관 중 드물게 주재국의 전통양식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참석자들은 오찬에 오른 김치를 앞다퉈 칭송하며 공감대를 높였다. 이 대통령은 "김치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건강에도 좋은 한국 전통 음식"이라며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전화통화에서 불고기와 김치를 하와이에서 즐겨먹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클린턴 장관은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식으로 알고 있다"며 김치를 '매직 푸드(magic food)'라고 표현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과거 충남 예산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김치를 담궈봤다"면서 김치 담그는 법을 상세히 이야기하자, 힐 차관보는 질세라 김치독의 깊이까지 설명해 참석자들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오찬을 마친 후 클린턴 장관은 "정말 맛있는 오찬과 풍요로운 대화를 했다"며 "어제 한국 국민들이 환대해주고 신문에도 크게 나와 깜짝 놀랐다"고 인사했고, 이 대통령은 클린턴 장관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스마트 파워(smart power)'를 언급, "클린턴 장관을 한국에서 응원하는 분이 많다"고 화답했다. 클린턴 장관은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재차 감사의 뜻을 밝혔다.
김은혜 부대변인은 "통상 관례와 달리 접견에 참석한 분들이 오찬까지 이어 자리를 함께 해 진지하고 속 깊은 대화가 오갔다"고 설명했다. 한국측에서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한덕수 주미 대사 내정자, 김성환 외교안보 수석이 배석했으며 미국측에서는 스티븐스 대사와 힐 차관보, 폴 셀바 합참의장 특보, 토드 스턴 기후변화 특사 등이 함께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