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대표가 3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쓴 시론 "'위대한 수령'의 레임덕"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은 올해도 예년처럼 1월 1일 신년 공동 사설을 발표했다. 신년 사설에는 북한의 한 해 대내외 정책이 총괄 정리되어 있다. 북한 주민들은 200자 원고지 60장이 넘는 이 글을 모두 암송하고 무조건 복종하도록 강요받는다. 올해 신년 사설은 '천리마 시대'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신년 사설은 "우리는 당의 부름 따라 천리마의 대진군으로 조국 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대혁신, 대비약을 일으켜 나가자"고 주장했다.

    북한이 천리마 정신을 강조하는 속뜻은 과거의 중앙 통제 경제로 복귀하고 싶다는 것이다. 북한은 90년대 중·후반 식량 배급제가 붕괴하여 대량 아사(餓死) 사태를 겪었다. 이후 2000년대 초 마지못해 시장을 허용했다. 이것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이다. 그러나 그 후 시장 확대를 통한 밑으로부터의 자본주의화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자 2005년부터 연이어 시장 통제 조치를 내놓는다.

    문제는 김정일이 시장 통제 조치를 발표하는 족족 실패한다는 것이다. 수령의 교시가 더는 먹히지 않는 것이다. 북한 시장 통제의 첫 신호탄은 200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아 발표되었다. 이때 북한 당국은 '국가배급제 복귀'를 선포하며 전격적으로 장마당 식량 거래를 금지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호언장담했던 '국가배급제'는 두 달 만에 말잔치로 끝났다.

    2007년 10월부터는 장사 행위를 성인영화 다루듯 연령 제한을 가하기 시작했다. 10월부터 '39세 이하 여성 장사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12월부터는 '49세 이하 여성 장사금지'로 확대됐다. 그리하여 한국의 경찰에 해당하는 안전부뿐만 아니라 간첩 잡는 역할을 하는 보위부까지 동원되어 시장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도 잠깐일 뿐 장마당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북한 당국은 2008년 11월 내각 지시문을 통해 또 한 번 시장 통제 칼날을 휘두르려 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상설 시장을 10일장으로 돌리고 여기서는 농산품만 거래하며 공산품은 국영 상점에서만 판매하라고 한 것이다. 북한 당국의 이 방침은 신년 사설에서 말한 천리마 시절로 복귀하자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60년대 천리마 시기에는 상설 시장 없이 5일장, 10일장 형태로 농민 시장이 열렸다. 그리고 공산품은 모두 국영 상점이 공급했다.

    천리마 시대로 돌아가자는 김정일의 교시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답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시장을 막으면 장사꾼들이 전부 거리로 밀려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질서가 더 혼란해지고 주민들과 전쟁이라도 치러야 할 것이다"라는 우려가 많다고 한다.

    김일성대 총장을 역임한 황장엽 선생은 북한을 수령절대주의 국가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과거 북한 주민에게 수령의 교시는 무조건적인 복종만 있을 뿐인 절대적인 정언명령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에게도 레임덕이 찾아온 것이다. 2005년 이후 수령의 시장 통제 조치는 제대로 집행된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특히 이번 신년 사설에 나온 천리마 통제 시대로의 복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수령 너는 짖어라,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간다"는 식의 냉소이다.

    공산주의 이념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역사는 두 번 반복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History repeats itself, first as tragedy, second as farce)." 지금 북한의 역사도 두 번 반복하고 있다. 김일성의 천리마 시대는 결국 수백만의 대량 아사라는 초유의 비극으로 끝났다. 그리고 김정일이 다시 치켜든 천리마의 깃발은 나오자마자 코미디로 전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