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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진 논설위원이 쓴 '노무현 정권의 초원 결혼식'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그저께 지방의 한 골프장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 아버지는 골프장 주인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물심(物心) 후원자다. 신부 아버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이 주례를 섰고 노 정권의 청와대·내각·국회 주요 인사 100여 명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초가을의 잔디는 푸르렀고 하늘엔 빨간 경비행기가 빙빙 돌았다. 색종이가 뿌려졌다. 신랑·신부는 행복했고 여느 결혼식처럼 축하가 쏟아졌다. 신랑·신부의 행복한 미래는 모두가 바라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이날의 특별한 결혼식은 여러 질문을 던지게 한다. 결혼식은 두 집안만의 사사로운 행사가 아니었다. 사돈의 성격이나 주례·하객의 면면이나, 이는 노무현 정권의 잔치였다. 부실과 폐해로 참혹하게 정권을 잃은 지 겨우 반년이 지났는데 이런 식의 잔치가 어울리는 걸까. 어려운 경제에 위기설까지 겹쳐 서민·중산층은 시름이 깊다. 추석이라지만 풍성한 수확의 기쁨은 남의 일만 같다. 고향 가는 선물보따리가 어느 해보다도 가볍다. 이런 상황에서 전임 정권의 잔치판은 괜찮은 것일까.
노 전 대통령은 전직 국가원수이며 지금은 국가원로다. 언행은 국가를 생각해야 하며 주례나 조문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혼사라서 주례를 섰다고 한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라면 노무현에 어울리는 결혼행사로 유도할 수는 없었을까. 노 전 대통령이 물러난 지 반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하루 2000~3000명이 봉하마을을 찾는다. 이는 무엇보다 노무현의 서민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전 정권의 일부가 비리 구설에 오르고 있지만 노무현 자신은 드러난 부패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얼굴을 한번 보려고 각지에서 봉하마을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통치를 잘 못했어도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서민형 대통령이라고 해서 여전히 많은 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전직 대통령의 첫 주례가 꼭 그렇게 요란한 잔치판이어야 하는가. 이 사회엔 결혼식을 올릴 수 없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을 봉하마을로 모아 노 전 대통령이 합동주례를 서면 얼마나 멋있는 낙향 사업일까.
신랑 아버지는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국회의원이 되기 오래전부터 부산에서 친구가 됐다고 한다. 같은 고졸이라는 정서도 우정의 접착제였을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노무현의 재정적 후원자였다. 지난 정권 때 그는 노무현의 386들을 돕기도 했다. 자신의 사업체에 취직시켜 주기도 하고 생활비도 지원했다. 변방 국가 출신 대사들과 여당 의원들을 자신의 골프장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정권의 후원자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공인인가 사인인가. 형식적으론 사인이지만 정권에서 차지했던 위치로 볼 때 그만한 공인이 흔한 일인가. 그렇다면 그는 아들의 결혼식을 공인에 걸맞게 치렀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 정권 때부터 경제가 어려워 많은 이의 허전한 가슴이 도심 뒷골목을 나지막이 돌고 있다. 그런데 웬 높은 하늘의 경비행기인가.
신부 아버지는 2005년 8월부터 20개월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 20개월 동안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정치는 어지러웠으며 경제는 힘들어져 갔다. 그 20개월 동안 수많은 신부가 돈이 없어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하고 훗날만을 기약하고 있다. 화려한 결혼식으로 딸의 미래를 축원하려는 아버지의 심정이야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는 ‘서민 대통령’의 20개월 비서실장이지 않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골프장에서 내 돈으로 비행기를 띄운 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자유경쟁 사회에서 균형발전은 무엇이며 평준화 교육은 무슨 소리인가. 노무현 정권이 그토록 외쳤던 ‘서민’ ‘참여’ ‘개혁’은 그 잔디밭 어디에 있는가. 그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결혼 행진곡이며 정권의 추억 행진곡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