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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대통령 형님 드라마'는 끝내 못보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선거는 사람을 낚는 낚시다. 낚시의 제1원칙은 낚싯바늘에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를 매달라는 것이다. 낚시꾼이 햄버거를 좋아한다 해서 낚싯바늘에도 햄버거를 꿰 물에 던져놓고 마냥 어신(魚信)만 기다려서는 고기 대신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비웃음을 낚기 십상이다.
정당의 후보 공천은 정치 낚시의 미끼 선정 작업이다. 낚고 싶은 어종(魚種)에 따라 새우나 갯지렁이를 고를 수도 있고, 혹 참다랑어처럼 큰 걸 노린다면 고등어나 전갱이 토막을 매달 수도 있다. 그러나 요 몇 주 한나라당 모습은 '정신 나간 낚시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파벌은 이 파벌대로, 저 파벌은 저 파벌대로 저마다 자기들의 기호(嗜好) 식품을 미끼로 써야 한다는 아우성과 드잡이로 소란을 피워왔다. 고기들 입맛은 아예 안중(眼中)에도 없다는 투다. 결국 한쪽에서 "이런 공천으론 선거 후 당 화합이 힘들 것"이라며 은근히 딴 살림을 예고하는 말까지 튀어나오고 말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이렇게 배부른 투정을 부리는 사이 서울 종로에 손학규 대표를, 동작을(乙)엔 정동영 전(前) 대통령 후보를 던져 넣었다. 두 사람 모두 땅 짚고 헤엄쳐도 될 자기네 '실내 풀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낙선되는 날엔 '정치적 객사(客死)'를 면치 못할 도박을 걸고 나왔다. 민주당 공천 드라마는 시골 변호사 풍(風)의 박재승 공천 심사위원장이 느닷없이 '금고(禁錮) 이상의 형(刑)을 받은 인물은 사면(赦免)이 됐다 해도 공천 신청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한칼로 전직 대통령의 아들과 측근을 도려내버렸다. 보통의 경우라면 공천 칼자루를 쥐고 휘둘렀을 당의 사무총장도 눈물을 머금고 말았다. 고기가 싫어하는 미끼를 던져서는 고기를 낚을 수 없다는 간단한 원리를 실천한 것이다. 미끼 맛은 낚시꾼보다 고기들이 더 잘 아는 법이다. 한나라당 공천이 잘됐다는 사람이 38.3%, 못됐다는 사람은 39.1%다. 그에 비해 민주당 공천이 잘됐다는 사람은 55.4%, 못됐다는 사람이 17.7%다.
한나라당이 등받이로 믿었던 새 대통령의 지지도는 벌써 한 달 전부터 고개를 떨궜다. 작년 12월엔 84%까지 솟았던 지지도는 인수위 후유증으로 10%,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 인사로 15%, 대통령 본인의 발언 파문으로 5%가량씩 녹아 내리더니 이제 간신히 50% 고개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10년 전 이맘때 김대중의 지지율이 83.3%, 5년 전 노무현의 지지율이 72.1%였다. 이 마당에도 한나라당이 '한나라당 지지율은 50% 민주당 지지율이 18%'라는 허수(虛數)에만 끝내 기대려 한다면, 국민들은 지구 온난화(溫暖化)가 남·북극의 얼음을 녹이는 속도보다도 민심 변화가 더 빠르고 더 무섭다는 사실을 톡톡히 보여줄 것이다.
그렇다고 새 정부가 정책적 결단과 실천으로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민주당 손 안에 든 국회가 한나라당 좋으라고, 무슨 입법 무슨 정책에 손을 번쩍 들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국민을 감동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감동 드라마의 필수품은 '자기 희생의 모습'과 '의외성(意外性)'이다. '그 사람이 그랬단 말이야…'하고 놀라는 소리가 국민 속에서 터져 나와야 한다. 문제는 오늘 한나라당에 아직도 그런 감동 소재(素材)가 남아있겠느냐다. 물론 없지는 않다. 박근혜 전(前) 대표와 강재섭 대표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대구 실내 풀장'을 박차고 나와 서울에서도 가장 험난한 곳을 골라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라도 공천의 부분적 재조정을 통해 박 전 대표의 맺힌 마음부터 먼저 풀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뜻밖의 인물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국민 마음에 진짜 불꽃이 튄다. 동생 대통령 만들기에 물심(物心)을 다 바쳤고, 어려운 고비마다 궂은 일을 도맡고, 싫은 소리를 해가며 동생의 양보를 받아냈고, 그래서 동생의 라이벌 진영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그쪽 하고는 이야기가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바로 그 인물이다. 5선 의원에다 받아놓은 밥상 같은 지역구, 그리고 가만 기다리면 언젠가 국회의장 자리가 저절로 돌아올 그가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몸을 던지는 것이다.
만날 신세만 지고 업혀 지내온 동생으로선 감히 입도 벙긋 못할 일이다. 오직 본인의 결단으로만 만들 수 있는 드라마 작품이다. 멀리 혹은 가까이 이명박 정권의 성쇠(盛衰)와도 걸린 드라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