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0일자 어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진 논설위원이 쓴 '손학규, 정동영 그리고 로페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시시각각시시각각 기사 모음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다. 미군 해병 중위 발도메로 로페스는 해병 1사단 5연대 1대대 A중대 3소대장이었다. 탄우(彈雨) 속에서 로페스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해변에 상륙했다. 눈앞에 북한군의 토치카가 기관총을 뿜어댔다. 그는 몸을 일으켜 수류탄을 던지려 했다. 기관총탄이 어깨와 가슴을 때렸고 수류탄은 부하 쪽으로 굴렀다. 로페스는 피가 흐르는 오른팔로 수류탄을 감싸 자기 몸 밑으로 넣었다. 수류탄은 터졌다. 미 의회는 그에게 ‘명예의 훈장’을 수여했다. 로페스의 마지막 장면은 ‘명예의 훈장’사이트(사진)에 실려 있다.

    로페스의 나이는 25세. 10대와 총각 세월을 거쳐 이제 결혼할 나이에 그는 저세상으로 갔다. 그는 가장 낯설고 공포스러운 전투에서 선두에 섰다. 소대장 로페스의 시체를 넘어 소대원들은 총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상륙작전은 성공했다.

    통합민주당은 기로에 서 있다.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죽는가 싶더니 박재승의 공천 혁명으로 겨우 한 번 싸워볼 만한 기력이 생겼다. 이제는 기력을 투지로 바꾸어 줄 불꽃이 필요하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는 병사가 아니라 장수다. 지금 민주당의 장수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대통령 후보다. 두 사람은 평생 조직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 이제는 자신의 희생으로 그 은혜를 돌려줄 때다.

    교수 손학규는 1993년 4월 재·보선 때 경기도 광명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개혁정치로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손학규는 대통령과 당의 은덕을 크게 보았다. 그는 96년·2000년 연거푸 국회의원이 됐고 2002년엔 경기도지사에 올랐다. 중간에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서 이적한 그를 대표로 뽑아주었다. 이제는 손학규가 조직(당)에 기여할 차례다.

    앵커 정동영은 96년 4월 전주 덕진구에서 승리해 국회의원이 됐다. 득표수는 전국 최다, 득표율은 전국 3위였다. 그는 2000년에도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전국 최고의 안전지대여서 그는 선수(選數)를 쌓았고, 덕분에 대통령 후보까지 될 수 있었다. 2004년 그는 비례대표를 자진해서 버렸지만 그것은 노인 폄하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진 것이다. 타의에 의한 희생이다. 이제는 자발적인 보은이 필요하다.
    손과 정은 모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병사의,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병사의 마음을 얻으려면 장수는 자신의 안위를 버려야 한다. 노무현이 그러했다. 봉하마을에서 노무현은 지금 손·정 두 사람의 결기(決起) 여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손과 정은 다투어 서울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해야 한다. 절체절명 야당의 장수에게 경기도 광명이나 서울 동작을은 어울리지 않는다. 종로에는 한나라당의 재선(再選) 장수 박진이 칼자루를 만지며 기다리고 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손·정으로선 쉽게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손·정은 떨어지기 위해서라도 나가야 한다. 나가서 왜 건전야당이 필요하며, 왜 유권자가 민주당을 다시 살려줘야 하는지, 피를 토하며 외쳐야 한다.

    스파르타 용사 300명을 이끌었던 레오니다스 왕은 전열의 맨 앞에서 싸웠다. 페르시아 대군 수십만을 이끌었던 크세르크세스 왕은 거대한 가마에 앉아 채찍으로 부하들을 독전했다. 수십만은 300을 이기지 못했다. 손·정은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