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의 25분 발언이 당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박 위원장은 4일 작심한 듯 부정·비리 연루자 공천배제 입장을 밝히자 손학규·박상천 두 대표는 계획된 일정마저 취소한 채 당사로 달려와 박 위원장과 긴급회동을 갖는 등 당은 폭풍전야다.

    박 위원장이 제시한 공천배제 기준이 적용될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차남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비롯, 당내 거물급 인사들이 모두 탈락하게 된다. 박 위원장은 "큰일에는 억울한 사람의 희생도 밟고 가는 게 역사"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이런 기준이 민주당 공심위의 정체성이라고 주장한 박 위원장은 "이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면 이 공동체에서 나가야 한다"고까지 얘기했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공심위 회의는 3시간 가량 마라톤으로 진행되다 잠시 휴회를 거친 뒤 오후 4시경 다시 속개됐는데 쉽게 결론을 도출하기 힘든 상황이다. 박경철 공심위 간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격론이 오갔고 많은 부분에서 이견이 좁혀졌지만 일부 부분에 대한 조정이 남아있어 아직 안개 속"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 선출 때처럼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해당 인사들의 반발이 쏟아졌다. 기준에 걸리는 인사들은 모두 "승복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쏟고 있고 당 일각에선 이들의 무소속 출마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DJ의 박 전 실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박지원, 김홍업은 개인 비리가 아니라는 억울한 사정을 충분히 설명했고 공심위는 억울한 사안을 경청하고 밝혀줘야 하는 것이지, 정치적 희생양을 만드는 데 동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DJ 차남 김 의원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정치적으로도 사면복권이 완료된 상황 아니냐"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손 대표가 임명해 정치에 복귀한 신계륜 사무총장 역시 불만을 쏟고 있다.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지만 당 내부에서는 박 위원장의 방침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우세한 상황이다. 공심위 역시 외부 인사와 이인영 의원 등은 박 위원장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구 민주당 출신 공심위원들은 대선에서 당을 위해 일하다 처벌받은 경우는 구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이 경우 박 전 실장은 물론 안희정, 안상수, 신계륜씨 등이 구제되고 나머지 비리 연루자 구제폭도 넓어질 수 있어 박 위원장으로선 이를 선택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박 위원장을 만나러 온 손 대표와 박 대표도 고민이다. 이미 박 위원장에게 전권을 맡기겠다고 공언했으니 손 대표로서는 제동을 걸기가 힘들다. 손 대표는 박 위원장과의 면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공천 개혁을 하려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그게 공천개혁 아니겠느냐"며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했고 면담장에 먼저 도착한 박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심각한 표정만 지었다. 이후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유인태 최고위원 등 중진들까지 당사에 합류해 두 대표와 공심위 회의 상황을 지켜봤고 지도부는 6시 비공개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는 등 당 상황은 긴박하다. 유 최고위원도 박 위원장의 공천 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