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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0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9일로 예정됐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민주노총 방문이 하루 전 취소됐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집시법(集示法) 위반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행 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가 조사를 받아야 당선자가 민노총에 가겠다"고 하자 민노총이 이 위원장의 경찰 출두를 거부한 때문이다.
서울 종로서는 작년 6월, 9월, 12월 불법집회에 참석한 이 위원장에게 3차례 출두 요구서를 보냈지만 이 위원장은 계속 무시해왔다. 경찰은 전화로도 10번 넘게 조사에 협조해 달라는 뜻을 전했는데도 반응이 없자 체포영장 발부도 고려했다고 한다.
민노총과 산하 노조 간부들은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불법 파업을 벌인 혐의로 경찰 출두를 요구받고도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수배 중에 불법집회나 시위현장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민노총 위원장도 그랬다. 노동계 지도부가 사실상 치외법권을 누리며 공권력을 우습게 여겨 온 것이다.
민노총 위원장은 지난 10일 "철도와 항공기를 세우고 전기를 끊는 총파업으로 국가 신인도에 타격을 주겠다"고 했다. 23일 대의원총회에선 올 봄부터 상시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6~7월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결의했다.
민노총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이 위원장에 대한 출두요구는 작년 6월부터 있던 일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민노총을 방문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이제 와서 경찰 출두를 조건으로 내건 것이 느닷없다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새 정부가 자기들과 대화하기를 꺼려한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일의 선후를 따져보면 이 위원장이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게 먼저다. 국가기관이 출두 요구를 했으면 일단은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고, 그때 변호인의 법률적 도움을 얼마든지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민노총 측이 경찰서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조사받겠다고 고집하게 되면 '특수 신분'으로 대접해 달라는 뜻으로 들린다. 조사는 조사대로 떳떳이 받고 주장할 것은 또 당당하게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대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려면 대화 마당부터 정상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