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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공천시기 문제로 시끄럽다.
박근혜 전 대표측은 공천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주장하고 있고, 이명박 당선자측은 공천을 대통령 취임 이후로 늦추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당 공천이 있을 때는 의례히 잡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공천 잡음이나 공천 갈등을 떠나 이 당선자측과 박 전 대표측이 공천시기를 놓고 어수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자, 배면에는 깊은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깝게는 당권으로부터 시작해서, 멀게는 2012년 대권에 이르기 까지 연동된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설(說)이 유포되고 있는 점과 맞물려 공천시기를 놓고 박 전 대표측이 불안감(?) 때문에 과민해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당선자측과 박 전 대표측이 공천시기를 놓고 대결하는 양상이지만, 내면적으로 이 당선자측은 공천 내용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박 전 대표측은 안정적 배분을 요구함으로써 실질적 당권을 염두에 둔 파워게임임을 은연 중에 나타내고 있다. 어느 쪽이라도 밀리면 끝장이라는 강박관념이 평행선을 달리게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일 이 당선자가 말했던 대통령 취임식 이후 공천 시사 발언에 대해, 날선 비판을 공개리에 피력했다. 한나라당 대구·경북지역 신년하례회에 참석한 박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정상적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당에서 가장 중요한 공천을 그런 식으로 뒤로 미룬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공천 갈등이 극도에 달했음을 강하게 내비쳤다.
공천과 관련하여 박 전 대표의 대 이 당선자 비판 발언은 새 정부 출범 이후의 공천 시기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는 뜻을 미리 대못질 해 놓은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가 만났을 때 “이 당선자가 ‘공천을 늦추지 않겠다’는 언급을 해 놓고, 지금 와서 공천을 취임식 뒤로 하자는 것을 이해 못하겠다”는 박 전 대표의 말 속에는 찬서리 같은 분노가 서려있다. 정치적 득실 계산이 상상외로 어긋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박 전 대표의 공천관련 발언은 매우 격렬한 저항의 몸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가 만났을 때는 ‘공정 공천’을 한 목소리로 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하느냐고 따지고 있는 박 전 대표의 모습에서 초조감까지 엿보인다.
결론적으로 공천 시기 문제는 어디까지나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결정될 일이지, 특정 계보의 이해관계로 공천일자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도다. 공천 방법이나, 공천 인사들에 대한 갈등은 서로 상의하며 나갈 수 있는 문제지만, 공천 시기만은 전적으로 당의 사정에 따라 당이 결정을 내려야 할 문제다.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와 만났을 때 이 당선자가 ‘시기를 늦추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을 했다고 주장한데 반해, 이 당선자의 주호영 대변인은 “이 당선자는 인수위 구성 후 당의 절차에 맞게 공천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비쳤을 뿐 ‘공천을 늦추지 않겠다’는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사태가 악화되자, 강재섭 대표는 긴급하게 진화에 나섰다. 강 대표는 “공천은 당 지도부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하는 것이며 (공천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공천시기를) ‘늦게, 빨리’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고 양측을 싸잡아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공천시기를 놓고 심각한 내홍에 빠질 공산이 크다. 공천은 으레 시끄러운 것이며, 조용한 공천은 있을 수 없다. 항상 원칙을 강조해왔던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강 대표는 당이 일부러 공천을 늦게 하거나, 일부러 빨리하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환언하면, 공천 자체의 시기는 당이 자율적으로, 당의 필요에 의해, 당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는 뜻을 짙게 풍긴다. 강 대표의 말은 상당히 합리적이며, 원칙에 준하는 말이다.
공천 시기를 놓고 이 당선자측과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이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내 것 챙기기’에 다름 아니다. 총선 공천 문제는 어디까지나 책임 있는 한나라당의 당무기구에서 논의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한나라당 당헌에 의해 최고위원회가 최종 결정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일단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된 이 당선자가 공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쯤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며, 권력이동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원칙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권력을 잡은 쪽이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행적 사실을 모르는 정치인은 단 한사람도 없었을 터인데…. 그렇다면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측이 공천에 영향을 깊게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뜻인가. 항상 원칙을 내세우며 정도를 표방해 왔던 박 전 대표의 정치 실험이 과연 성공할 것이냐는 조금 두고 볼 일이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