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내년 8월 15일의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어제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모여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민간 차원에서 학술회의, 자료 편찬, 예술행사 등의 활동을 펼쳐 건국 60주년을 국민적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부가 서둘러 주기를 바라며 기다렸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마저 기념사업을 차기 정부에 넘기겠다고 해서 이들이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과연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8월 15일은 광복절인 동시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이다. 대한민국은 광복 후 3년간의 미군정(美軍政)을 거친 뒤 1948년 5월10일 총선거, 7월 17일 헌법 제정에 이어 그해 8월 15일 정식 출범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자유선거로 기록된 5·10 총선거에서는 남한 유권자 984만 명 가운데 79.7%가 등록하고 등록 유권자의 92.5%가 투표에 참여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거보(巨步)를 내디뎌 한강의 기적의 바탕이 됐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좌익세력은 끊임없이 폭동과 사회혼란을 일으켜 건국을 방해하고 남한마저 공산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이들의 획책에 당당히 맞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혜안이었고 축복이었다. 그 건국의 주역들은 위대했다. 한반도의 남쪽만이라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함으로써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과 열정으로 불과 30∼4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건국의 의미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현 정권만 해도 대한민국 역사를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역사”라고 왜곡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을 ‘분단주의자’로 매도하고, 해방공간의 좌우합작 세력과 심지어는 구(舊)소련의 앞잡이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자기부정의 역사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민간 차원이긴 하지만 건국60주년기념사업 준비위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을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 건국을 기념하는 날은 어느 나라에서나 대표적 국가 경축일이다. 건국이 없다면 나라도, 국민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를 되살리는 일에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