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8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 선언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뒤엎는 쿠데타다. 무력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이 군사 쿠데타라면 그는 권력욕을 이기지 못해 민주주의를 뒤엎은 욕망의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는 근사한 이유를 둘러댔다. 정권의 무능과 독선, 법질서 실종, 흔들리는 시장경제, 원칙 없는 대북 정책, 기로에 선 한·미 동맹, 동력을 잃은 경제, 공교육의 붕괴…. 한나라당의 주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은 이를 바꾸기 위해 경선을 통해 이명박 후보를 내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이회창이 나섰다. 그는 전당대회 때 어디 있다가 이런 새치기를 하는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렇게 농락해도 되는가. 전당대회에 참여한 당원, 국민은 핫바지란 말인가. 이런 사람이 혹시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전횡을 부리겠는가. 자기만이 원칙을 판단할 수 있고 민초들은 무얼 모른다는 말인가. 이 무서운 오만이여….

    이 전 총재는 두 번의 선거에서 각각 1000만 표를 얻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의 패배를 아쉬워했다. 그가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겠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 때문에 이 나라가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 했는가. 당시 대통령 다 된 듯 오만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의 엄청난 과오는 잊고 지금 와서 ‘국민 여러분’ 어쩌고 하는 모습이 너무 뻔뻔스럽다. 자기를 지지했던 사람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는 법과 원칙을 논했다. 법과 원칙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법과 원칙을 깨고 변칙적으로 나서도 되는가. 자기가 하는 일이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대의를 위해 이회창만은 모든 변칙적 방법을 써도 무방하다는 말인가.

    그는 자기당 소속의 후보를 ‘불안한 후보’라고 했다.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법 위반, 위장 전입과 BBK 의혹을 겨냥한 듯하다. 그렇다면 자신은 결점이 없다는 말인가. 아들 병역, 차떼기, 세풍(稅風) 때문에 두 번이나 실패한 사람이 누구인가. 왜 자신 눈에 들어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가. 그의 ‘불안한 후보론’은 지금 여권이 주장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회창은 여권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왔는가. 그가 걱정하는 대로 이 후보에게 납득할 수 없는 하자가 드러나면 한나라당은 이 후보를 사퇴시키고 전국위원회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박근혜 전 대표 등을 대안 후보로 세울 수 있다. 이것이 순리고 원칙이다. 이회창은 박근혜 다음이어야 한다. 그것도 당원이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는 회견에서 왜 그가 나서야 하는가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막판에 사퇴할 수도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사퇴할 일이라면 왜 나서는가. 그에게 쏠리는 비난을 피할 퇴로를 남겨두겠다는 얄팍한 수에 불과해 보인다. 정말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오히려 원로로서 후보에게 간곡히 충고하는 것이 옳았다. 출마의 변을 “개인희생 운운…” 하는 모습은 너무나 역겹다. 이회창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나라로서도 불행이다. 그는 법치와 원칙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결국은 원칙과 질서를 뒤엎었다. 끝까지 자기를 지키지 못하는 이러한 인물들 때문에 우리의 정신세계, 도덕세계는 더욱 황폐화되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판단만 남았다. 민주주의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국민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