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회동은 백악관이 2일(현지시각) 공식적으로 면담 계획을 부인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따라 이 후보측은 외교적 망신은 물론이고, '글로벌 리더'로서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또 결정되지도 않은 외국 정상과의 일정을 서둘러 발표함으로써 한나라당 외교·공보 두 라인의 책임론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8일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위원(차관보급)의 '이 후보와 부시 회동' 발언이 보도된 직후, 한나라당은 박형준 대변인을 통해 "멜리사 버넷 백악관 의전부실장이 공식문서를 보내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박 대변인은 강 위원의 언론보도 내용을 '팩트(fact)'라며 '역사적 회동'이 이뤄지는 것에 아무런 의심을 달지 않았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미국측에서 부담을 갖지 않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차기정부까지 내다본 결정이 아닌가 한다"며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관이 2일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데 이어 고든 존드로 백악관 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이날(워싱턴 시각) 워싱턴 특파원들 앞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그런 면담은 계획돼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존드로 대변인은 "이 후보의 부시 대통령 면담 요청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 대통령이 특정 국가의 대통령 후보와 면담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회동 논란이 '해프닝'에 그쳤음을 의미한 것이다.

    최초로 야당 대선후보가 미국 현직 대통령과 면담한다는 소식이 '이명박 대세론 굳히기'로 이어질 것을 기대했던 이 후보측으로서는 말그대로 '망신살'이 뻗힌 셈이다. 이 후보측은 백악관서 일정확인 메시지가 왔다며 이를 "미국이 이명박 후보의 위상을 인정했다"고 해석했었다. 또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회동은 '성사'부터 '무산'까지 미국측의 확인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한나라당은 강영우 백악관 정책위원 한 사람의 말에만 의존해 외교적 절차를 거치는 신중함없이 '확정'발표를 서둘러 하는 바람에 당 안팎의 비난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측의 '부실한' 외교라인이 이번 해프닝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다. 이 후보의 외교라인 중 외교관출신은 서울시 국제관계대사를 지낸 박대원 전 알제리 대사뿐이다. 그러나 박 전 대사역시 '부시 회동'과 관련해서는 강 위원의 말을 전하며 "…하더라"식의 언급밖에 할 수 없을 만큼 허술했다. "책임지지도 못할 '오버'가 물의를 일으키게 된 원인"이라는 한 당 관계자의 지적이 이같은 상황을 설명한다. 이 후보측이 '공'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접근하는 '비공식 라인'을 신뢰하고 접촉해온 점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소위 '4강외교(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이같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그 말이 당 외부에서 나온 건지, 내부에서 해야겠다는 판단에서 였는지 모르지만 후보가 왜 지금 시점에서 외국을 다니며 활동해야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당선된 후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4강외교를 '대세론'만을 위해 무산 위험을 무릅쓰고 강행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같은 참모진의 '헛발질'속에서도 이 후보의 직접적인 확인이 없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28일 최초 발표 당시에도 "그쪽(백악관)에서 확인했다고 알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후 강 위원과 백악관, 주한 미 대사관의 '진실공방'이 이어질 때도 이 후보는 "지켜보자"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부시 회동과 무관하게 '4강외교'를 추진할 계획이다. 나경원 대변인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현안브리핑을 통해 "방미 일정과 관련해 그동안 우리측 라인을 통해 면담성사 여부를 전해 들었을 뿐"이라며 "미 국무부와 대사관측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어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예정된 미국 방문은 계속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나 대변인은 또 "4강 외교는 경제·자원 외교 차원에서 추진되는 만큼 부시 대통령 면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