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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30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제 ‘선진경제 도약을 열망하는 지식인’이라는 1016명이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전·현직 대학총장 등 교육계 643명, 법조계 54명, 의약계 152명, 언론·문화·체육계 83명 등이다. 국민은 누구나 특정 주자에 대한 지지를 밝힐 수 있다. 이 후보의 자질에 대한 이들의 판단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행동에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동원되는 데엔 문제가 많다.
'지식인 선언'이라는 다섯 글자에는 한국 현대사의 피와 땀이 묻어 있다. 1960년 4월 25일 서울·지방 대학 교수 258명은 3·15 선거를 부정선거로 선언했다. 교수들이 움직이자 여론은 결정적으로 따랐고 이승만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지식인의 시국선언은 70~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는 섬뜩한 저항이었다. 이들이 말하면 세상은 들었다. '지식인'의 무게 때문이다.
선언은 민주정부에서도 이어졌다. 현 정권 들어서도 원로·지식인 수백 또는 1000여 명이 시국선언을 내놓곤 했다. 선언은 좌파세력의 자유민주체제 위협을 규탄하거나, 성급한 전시작전권 환수를 비판했고, 새만금 간척을 반대하기도 했다. 사안의 무게는 달랐을지 몰라도 지식인 선언은 이렇듯 국가와 사회의 가치를 수호하거나 중요한 사회 문제에 의견을 표하는 공적(公的)인 것이었다.
지식인 1000여 명이 정쟁과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특정 정당의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은 지식인을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차원으로 끌어 내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요 대선후보들 캠프에는 '폴리페서(polifessor·정치참여 교수)' '폴리널리스트(polinalist·정치참여 언론인)'가 수백 명 달라붙어 있다. 이들 중 적잖은 이가 상식의 수준을 넘어 자신의 소리(小利)를 위해 지식인이라는 간판을 팔고 있다.
누구를 지지하는 것은 자유지만 지식인이란 단어 앞에선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