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에 이 신문 이동관 논설위원이 쓴 '한나라당은 무엇을 지키려 하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6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대소(對蘇) 강경외교와 ‘작은 정부’를 내건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위대한 사회’라는 진보 구호를 앞세운 민주당 린든 존슨 후보에게 참패했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44개 주에서 졌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공화당 출신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자 “보수는 죽었다”는 자탄까지 나왔다.

    절멸(絶滅)의 위기 속에서 보수진영은 자기혁신에 나섰다. 헤리티지재단 등 싱크탱크들이 정책 어젠다를 개발하고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 등 기독교 및 시민단체들이 도덕성 회복운동을 폈다. 16년간의 각고면려(刻苦勉勵)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신(新)보수 시대’를 연 밑거름이 됐다. 이런 자기혁신의 한 축이 ‘진보좌파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이다. 지금도 미 보수 논객들은 ‘서민과 소수’를 팔아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진보 엘리트들을 ‘리무진 좌파’라고 비판한다.

    한국의 보수우파는 ‘좌파=무능’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뉴라이트 등 시민운동단체의 치열한 담론투쟁의 산물이다. 정작 보수의 버팀목이 돼야 할 한나라당은 무임승차도 부족해 ‘보수=부패’라는 딱지를 못 떼고 보수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4·25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민은 한나라당에 ‘부패-철밥통 구조를 안 바꾸면 언제든지 심판하고 버릴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그런데도 강재섭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 간의 경선 룰 다툼에 묻혀 있다가 어제서야 현역의원 1명을 포함한 21명의 ‘부패의혹 당원 리스트’를 윤리위원회에 넘겼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공천=당선’인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권을 국회의원이 틀어쥐고 있으니 ‘군수는 3억 원, 광역의회 의원은 1억 원이 정찰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더욱이 대표 자신부터 과태료 대납사건에 연루돼 있다. 또 부인의 수뢰 사실이 드러나자 정계 은퇴를 공언하고도 버티는 중진 의원,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의원 등을 그냥 놔둔 채 ‘뼈를 깎는 개혁’을 외친들 국민이 공감할 리 없다.

    시장경제, 작은 정부, 안보 중시 등 보수적 가치를 보수(保守)할 것이라는 믿음도 심지 못하고 있다. ‘부자당’ 소리를 들을까 봐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을 6억 원 이상으로 넓히는 데 합의해 주었고, 지난해 예산심의 때는 9조 원 감세를 호언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심지어 강 대표는 호남에 가서 “(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이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까지 망쳤다”는 ‘해바라기성 발언’까지 했다.

    스타 기근에 허덕이는 범(汎)여권과 달리 한나라당은 이, 박 두 스타의 인기에 힘입어 그나마 버티고 있다. 그러나 결코 방심할 처지가 아니다. 여론조사만 봐도 보수-중도-진보의 3분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늘어난 중도 유권자의 상당수는 진보에서 옮겨 온 사람들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층이다. ‘한나라당이 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응답 비율도 26%에 불과하다.

    이러니 여권에선 ‘맞춤형 후보만 찾으면…’이라고 벼른다. 좌파 진영은 “한나라당 꼴을 보면 이번 대선에 져도 5년 뒤 반드시 정권을 찾아올 수 있다”고 수군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