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은 국가예산을 지원 받은 시민단체의 대표 및 상근 임직원들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현행 선거법은 ‘특별법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출연 또는 보조금을 받는 바르게살기 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 협의회, 한국 자유총연맹 등 세 단체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중앙 또는 지방정부의 돈을 받았으면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나라당 개정안은 이 원칙을 시민단체 전체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미국 연방세법은 비영리기관을 선거운동 같은 직접적인 정치활동에 개입하는 단체와 그렇지 않은 단체로 구분한다. 국민이 정치활동을 않는 단체에 내는 기부금에 대해서는 세금공제를 해 준다. 단체 입장에선 많은 기부금을 걷을 수 있으니 실질적인 정부 지원이 된다. 반면 정치활동을 하는 단체에 내는 기부금엔 세금 공제혜택이 없다. 단체로서는 정치활동을 하는 대가로 세금공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것인지 아니면 정치활동을 자제해 세금공제 혜택을 받아 시민 기부금을 늘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국가 보조금도 보건의료, 교육, 예술, 문화 분야 등 비정치 활동을 하는 단체에만 지원된다.

    시민단체의 정치활동과 국고지원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21세기의 세계 표준이다. 그러나 이 표준이 대한민국에서만은 통하지 않는다. 2004년 총선 때 총선시민연대에 속했던 전국단위 단체 25곳 중 8곳이 2003년 정부 예산을 지원 받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송위원회, 언론재단 등을 통해 최다액인 1억여 원을 받았고, 나머지 7개 단체도 최소 3000만원을 지원 받았다. 총선시민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의 대상은 당적별로 한나라 100명, 민주 57명, 자민련 24명, 열린우리당 10명 순이었다. 정부 돈을 받은 시민단체가 주로 야당 후보를 표적으로 낙선운동을 벌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부지원을 받은 시민단체가 여당 선거운동을 도와 준 꼴이 된 셈이다.

    시민단체들도 이제 양자 선택을 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특정 정파의 선봉대 역할을 하려면 더 이상 나라에 손을 벌리면 안 된다. 반대로 시민들의 기부금만으로 도저히 운영을 할 수 없고, 그래서 국가지원을 받아야 할 처지라면 정치에선 손을 떼야 한다.